아차, 이러다 도미 맛도 보기 전에 이 봄이 이울지도 모른다. 계절의 감각이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봄날은 이제 내게 얼굴만 보여주고 손 한 번 쥘 틈 없이 총총 떠나는 계절이 된 듯하다. 이 판에 도미를 바라 입맛을 다시는 형이하학이 방정맞긴 하다만,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는 바닷물고기가 또한 도미이다. 한국인의 입말과 한국어 사전에서 ‘도미’는 도밋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 일체를 이르는 말이다. 요컨대 참돔·먹돔(감성돔)·붉돔·황돔·혹돔·줄돔·군평선이 등등이 다. 도미라는 동아리에 들되 일반적으로 도미라고 하면 ‘참돔’을 가리킨다.
도미는 문헌 곳곳에 보인다. 서유구(1764~1845)는 <난호어목지>에서 “사계절 늘 있어 어부들이 언제나 잡지만 음력 3월 조기를 잡은 뒤에 더 많이 잡히므로 서울에서 유통되는 시기는 매년 4월 초파일 전후”라고 정리했다. 여기서 말하는 도미는 참돔과 붉돔이다. 이렇게 서울로 모여든 도미는 갖가지 음식으로 변신했다. 일반적인 회와 구이는 물론이고 장국 바탕에 끓이는 국, 바특한 찌개, 양념 입힌 조림, 전유어, 도미살을 만두피 삼아 삶거나 찐 어만두, 도미살을 얌전하게 떠 녹말을 씌워 데친 뒤 갖가지 채소와 버섯을 더해 완성하는 어채 등이 이즈음에 이미 태어났으리라. 도미를 주제로 한 일품요리는 평양, 개성, 해주 등으로도 번지고 20세기로도 이어졌다.
식민지 시기 조선어 신문과 라디오 방송은 특히 도미찜을 두고 봄여름 사이에 못 먹고 지나가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당시 언론이 도미찜에다 붙인 표현은 “미인과 풍류보다 오히려 도미 한 마리” 하는 식이었다. 하긴 이때의 도미찜이란 도미에 녹말을 묻혀 지져, 다진 소고기와 채소 위에 올리고, 양념국물을 끼얹어 가며 조림인 듯 찜인 듯 익혀, 다시 색색의 채소·버섯·황백지단 따위 고명을 얹어 완성하는 방식이었다. 그 치레만으로도 압도적인 데가 있긴 하다. 이 계통 생선찜에는 조선시대부터 ‘승기악탕(勝妓樂湯)’, 곧 ‘기생의 춤과 노래보다 매력적인 음식’이라는 별명도 따라다녔다.
수산학자 정문기(1898~1995) 또한 도미의 산업상 가치뿐 아니라 그 음식의 매력을 콕 집어 거론했다. “수산식물 중 도미찜 또는 도미국이라고 하면 누구나 미각을 자극시키는 요리이라.”(동아일보, 1939년 6월6일자) 도미를 둘러싼 감각의 연대기에서 유중림(1705~1771)의 한마디도 잊을 수 없다. 유중림은 <증보산림경제>에서 이렇게 썼다. “자미재두(滋味在頭)”. 곧 ‘도미의 좋은 맛은 도미대가리에 있다’는 뜻이다. 이런 감각은 이용기의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다시 나타난다. 이 책의 도미국 항목 마지막 문장이 이렇다. “이 국의 대가리는 생선 대가리 중에 맛이 제일 좋으니라.” 생선은 대가리가 특히 맛있다는 뜻의 관용어 ‘어두일미(魚頭一味)’란 도미 대가리 덕분에 태어났을까? 일찍이 조선 전기부터 도미어(到美魚), 도음어(都音魚) 등으로 기록되기 시작한 이 바닷물고기의 내력이 그 맛과 함께 그윽하다.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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