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의 문헌 속 ‘밥상’

명란과 우크라이나, 그리고 평화

“한국인은 바다를 내륙 깊숙이 끌고 들어와 살아왔다. 오늘도 그렇다.” 인류학자 오창현 교수(국립목포대)의 이 한마디는 장을 보거나 밥상을 차리거나 늘 새삼스럽다. 그렇지, ‘깊숙이’지! 한국인의 바다는 내륙 뱃길이 끊겼다고 끊기지 않는다. 한국인의 바다는 말에 실려, 말도 못 갈 길이라면 사람의 등에 실려 깊은 골로 들어가고, 높은 산에 올랐다. 두메산골에서도 새우젓 두어 달걀찜 찌고, 젓갈 넣어 김치 담갔다. 구실아치한테서도 잊혀진 화전민도 미역국은 끓였다. 누구에게나, 간 질러 맛 들였거나 잘 말려 갈무리한 수산물 한 입씩은 돌아갔다. 온갖 젓갈, 말리거나 염장한 바닷말, 굴비며 간고등어가 있는 밥상, 말린 가자미·장어·대구·가오리·졸복·멸치·오징어 등등에 얽힌, 이루 다 주워섬기기 어려운 그 ‘깊숙이’의 면면한 일상이 현대 한국형 냉장·냉동 수산물과 그 유통을 낳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산골 가던 말짐과 등짐은 오늘 어디에 있는가? 원양과 바다와 내륙을 잇는 냉장·냉동 탑차와 활어차와 수족관에 깃들었다고 하면 과장일까. 오늘이나 예전이나, 그 물목이 무엇이든 출발은 바다의 노동이다. 그 생산의 풍경은 또한 문학 안으로 훅 치고 들어오곤 했다.

“10월 된서리 내리고/ 해협에는 파도가 끝없이 일렁이네/ 어부들 다투어 말하느니/ 명태가 내뱉는 숨에 파랑이 인다지/ 콧구멍 벌렁대며 왁자지껄한 어부/ 만선의 기쁨은 껄껄 웃는 입마다 하나 가득 (중략) 만경창파 비단처럼 아롱지는데/ 북쪽 바다의 고깃배는 나는 듯 물결을 뚫고/ 고기떼 오가는 길목을 끊고는/ 촘촘히 그물 쳐/ 한 마리라도 놓칠세라 (중략) 고깃배 양쪽으로 벌려 서/ 모두가 손에 손 맞춰 힘쓰니/ 어영차 소리 저 하늘까지 우레처럼 울린다.”

옛 시인 김려(1766~1821)가 노래한 명태잡이 풍경이 이렇다. 예전에는 음력 10월부터 2월까지 조업해 얼면 언대로 동태로 유통했다. 겨울이 얼린 동태가 원양어선 냉동고 동태에 앞선다. 덕장으로 간 명태는 북어나 황태가 됐다. 따로 간추린 명태의 간·이리·알집·창자·아가미 또한 저마다 고마운 식료였다. 그 가운데 알집은 귀한 명란(젓)이 되어 한국인의 밥상에 올랐다. 그러다 시절이 변했다. 어느새 동해안에서 명태의 씨가 말랐다. 그래도 포기 못한다. 오호츠크해와 베링해에서라도 명태를 가져와야 한국인은 직성이 풀린다. 이 때문에 이제는 5월 말까지도 명태 어업의 일단이 이어진다.

오늘날 오호츠크와 베링 바다에서 난 연간 3만t, 1억8000만달러(약 2100억원) 규모의 명태 알집이 집결하는 데가 부산의 감천항이다. 여기서 그해 물량을 선별해 경매한다. 이를 한·일이 나누어 갖는다. 최고 품질 물량을 놓고도 한·일전이 벌어진다. 원료 품질이 명란 품질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때에도 중한 것은 지구의 평화다. 우크라이나에서 끔찍한 전쟁 소식이 들려오자마자 러시아산 명태 알집은 ㎏당 2000~3000원 상승했고 미국산은 3000~4000원 상승했다. 2023년 전망은? 아무도 모른다. 감천항의 통신은 이 한마디일 뿐이다.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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