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의 계절이다. 익숙하고 친근한 이 사물의 조리 원리에는 재미난 구석이 꽤 있다. 국수의 전제는 곡물의 가루 또는 다양한 식물의 전분에 물을 더해 친 반죽이다. 이 반죽에서 길거나 짧게, 넓거나 좁게, 가늘거나 굵게, 각지거나 원만하게, 별별 형상으로 가락을 내면 일단 식료품으로써 국수가 된다. 순 국숫발만을 일컫는 한국어는 ‘사리’이다. 이렇게 낸 식료품을 주재료로 한 음식이 또한 국수이다. 사람들은 차거나 따끈한 국물에 말아, 짭짤한 양념이며 매콤한 양념장을 얹어 국수 한 그릇을 완성한다. 만두는 국수의 하위분류에 들어간다. 만두란 늘이거나 편 반죽이 전제이기 때문이다.
국수의 가락을 내는 방식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반죽을 양손으로 잡아 뽑아 가락을 내는 방식이다. ‘수타면(手打麵)’이라는 말을 식품업체가 유행시켰지만 동아시아를 관통하는 어휘는 잡아당긴다는 뜻의 ‘납면(拉麵)’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올림말은 ‘손국수’이다. 손으로 늘여 뽑는 만큼 그 국숫발의 길이는 아무리 늘여도 ‘한 발’, 곧 ‘두 팔을 양옆으로 펴서 벌렸을 때 한쪽 손끝에서 다른 쪽 손끝까지의 길이’에 들어온다. 반죽을 한 손에 쥐고, 짧게 잡아 뜯는 방식인 수제비는 이 방식의 하위분류에 속한다. 다음으로 반죽에서 가락을 뽑아, 그 가락을 다시 실처럼 늘여 뽑는 방식이 있다. 덩이진 반죽에서 밧줄을 내고, 밧줄에서 실을 뽑고, 드디어 300, 1700, 2000㎜까지 가늘고 길게 늘인다. 한자로 쓰면 ‘소면(素麵)’ 또는 ‘삭면(索麵)’이다. 물론 ‘소면’에는 ‘고명 없는 국수’ ‘순백색 사리’ ‘고기 육수 및 고명 쓰지 않은 국수’라는 뜻도 있다. 한데 제면 원리로서의 소면이란 한마디로, ‘밀가루반죽에서 뽑은 실’이다. 다음 반죽을 밀대로 밀어 넓게 편 뒤 칼로 썰어 가락을 내는 칼국수가 있다. 한자로 쓰면 ‘도면(刀麵)’ 또는 ‘절면(切麵)’이다. 어느 문화권에서나 친근한 방식이다. 넓게 잡아 반죽에 칼날을 대 가락을 내는 모든 방식에 여기에 든다. 그러니 제면기 칼날로 그어 가락을 낸 국수도, 덩이진 반죽을 칼날로 켜 국숫발을 내는 ‘도삭면(刀削麵)’도 이 동아리에 든다. 끝으로 반죽을 구멍, 분창 등에 통과시켜서도 가락이 난다. 냉면, 막국수, 스파게티가 그 예다. 힘껏 밀어 뽑으니 ‘압면(壓麵)’ ‘압착면(壓搾麵)이라 한다. 압면의 방식은 해방 전까지, 한민족에게 가장 익숙한 방식이었다.
해방 전까지, 제면용 밀가루는 구할 엄두를 내기 힘들 만큼 귀했다. 보편적인 국수의 재료는 메밀가루와 칡전분이었다. 조선 말기를 지나며 감자, 고구마, 옥수수의 전분이 껴들었고, 그 물성이 모두 사출에 마침맞았다. 다시 사전을 펴자. 문세영 등 조선어학자들이 목숨 걸고 편찬한 ‘수정증보조선어사전’의 국수 항목 정의 제1이 이렇다. “모밀(메밀)가루를 물에 반죽하여 국수틀에 눌러서 가늘고 길게 만든 음식.” 여지없이 메밀이 밀에 앞선다. 압착이 모든 방식의 앞에 있다.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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