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뒤늦게 깨닫는 ‘빈집의 사랑’

영화 <건축학개론>의 서연(수지)과 승민(이제훈)은 빈집에서 첫 데이트를 한다. 데이트인 줄 모르고 하는 데이트이다. 자신이 사는 동네를 탐색하라는 과제를 하다가 같은 동네 정릉에 사는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났고, 정릉 토박이인 승민이 제주도가 고향인 서연에게 이곳저곳 안내를 해주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서연의 마음을 단번에 끈 곳이 있었으니 그곳이 바로 빈집, 버려진 집이다. 승민은 주인이 없는 곳이라 들어가기 망설이지만 서연은 “뭐 어때?”라며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다. 두 사람의 성격과 닮아 있다. 서연은 그렇게 빈집의 문을 요란한 소리로 열고 들어가, 죽어 있는 시계태엽을 감아 살려 준다. 승민은 주인 없는 물건에 손을 댔다고 겁내지만, 서연은 또 한 번, 뭐 어때 죽은 거 살려준 건데, 라고 말한다. 그때, 승민의 마음속 첫사랑의 시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흐르기 시작한다. 마치 죽어 있던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처럼.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의 한 장면.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둘이 그렇게 쓸모없는 공간, 말하자면 등기도 되지 않고, 사람이 살 수 없는 곳만 골라가며 데이트를 한다는 사실이다. 다음 만남에서 두 사람은 개포동의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서울을 내려다보며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을 나눠 듣는다. 풍광이 너무나 아름답지만, 옥상은 추억을 쌓되 살 수는 없는 곳이다. 그리고 오래되고 버려진 역사에 가서 철길을 걷고 미래를 이야기하고, 마침내 첫 키스를 나눈다. 그나마도 서연이 잠들었는지, 잠든 척했는지 모를 그런 순간에 벌어진 첫 입맞춤이다. 두 사람의 기억은 불균형하다. 두 사람이 나눈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누군가에겐 너무 소중하지만 누군가에겐 그저 이야깃거리에 불과하다.

 

두 사람이 데이트를 나누는 공간들은 그렇게 쓸모가 없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운 공간이다. 어쩌면 추억의 아름다움은 쓸모와 반비례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에서는 이처럼 은밀한 기억을 나누는 장소는 대개 무쓸모하다. 경제적으로 봐서도 가치가 없고 등기하거나 서류로 만들 수 없는 빈 곳이 많은 것이다. 가령, 강동원 주연의 <가려진 시간>에 주요 테마로 등장하는 공간도 그렇다. 두 아이들이 서로의 상처받은 마음을 보듬고, 비밀을 공유하던 집 역시 이곳저곳이 부서진, 버려진 집이다. 그렇게, 소중한 것들은 등기되지 않는, 경제적 가치가 없는 것으로 묘사된다. 아니, 어쩌면 정말 귀중한 기억들은 그렇게 버려진 곳에 가만히 보관되고, 쌓이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기형도의 시 ‘빈집’의 한 구절처럼 가엾은 내 사랑은 빈집에 갇히는 것이다.

 

영화 <노무현입니다>를 보고 난 첫 느낌은 바로, 그렇게 잊혀져 있던 첫사랑을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첫사랑은 어쩌면 실패하게 될 운명일지도 모른다. 성큼성큼 발소리를 내며 걸어 들어온 서연의 다가옴이 사랑의 시작인 줄 모르고 하루를 보낸 승민처럼, 어쩌면 노무현 시대를 지났던 우리들도 그렇게 그게 사랑인 줄 모르고 지나친 것일지도 모른다. <노무현입니다>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하지만 상당히 편파적이고, 주관적이다. 어떤 의미에서 다큐멘터리의 편파성과 주관성은 모순이며 역설이다. 그러나, <노무현입니다>에서만큼은 그 편파성이 꽤나 설득력이 있다. 말했다시피, 이 영화는 사랑인 줄 모르고 지나쳐 버린 누군가가 시간이 흘러 뒤늦게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깨닫는 사후적 고백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고백은 사적이면서, 주관적이다. 그리고 기억은 어떤 의미에서건 편파적일 수밖에 없다. 마치 버려진 역사에서의 입맞춤에 대한 기억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듯이.

 

말하자면 <노무현입니다>는 노무현이라는 사람의 정치적 공과나 사법적 진위를 가리는 작품이 아니라 노무현이라는 사람에 대한 기억의 재구성이다. 아니 회고를 넘어서 어쩌면 살아남았기에 매일 조금씩 달라지고, 변할 수밖에 없는 남아 있는 자들의 회상이자 뒤늦은 고백이다. 노무현을 회상하는 이들의 내레이션으로 이루어진 장면들에서, 누구 하나 눈빛이 촉촉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런데, 그걸 두고 과장이나 연출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정면을 마주하는 그 정직한 촬영방식은 직접적으로 그 감정을 전달해 준다. 좌절과 기쁨의 순간을 기록해둔 장면들은 노무현 개인에 대한 고증이라기보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던 기억의 편린을 다시 꺼내준 것에 가깝다. 관객들이 마주하는 것은 과거의 어떤 사실이 아니라 잊고 있던 어떤 감정이다. 노무현을 통해 뜨거웠던 나, 그런 나와 다시 마주하는 것이다.

 

첫사랑부터 완숙한 사람이 어디 있으랴. 누구나 첫사랑엔 서툴고, 또 실수투성이이다. 그렇게 해도 될 줄 알고, 첫사랑엔 쓸데없는 고집도 피우고, 해서는 안될 말도 내뱉곤 한다. 시간이 흘러, 삶을 알고 난 후 그 첫사랑의 회복불가능을 체험하고 나서야 우리는 그것이 첫사랑이었음을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지금의 내가 여기 이렇게 있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7월5일 개봉한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주인공 피터 파커도 목하 첫사랑 중이다. 학교에서 가장 아름답고, 상냥하고 열성적이며 똑똑하기까지 한 그녀는 누가 봐도 첫사랑의 주인공이 될 만하다. 과연 그 첫사랑은 어떻게 될까.

 

돌이킬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그리움은 아마도 새 희망의 정수리에 부어야 마땅할 것이다. 한용운의 시처럼 말이다. 너무 쉽게 믿음을 버리지 않고, 너무 아프게 사람을 흔들지 않고, 한 사람에 대한 열정을 너무 냉정하게 미움으로 바꾸지 않고, 그렇게 조금은 시간을 두고 바라보는 것, 그게 바로 두 번째 사랑의 태도가 아닐까? 문득, <스파이더맨>을 보며, 엉뚱하게도, 돌이킬 수 없는 사랑의 실패가 생각나고 말았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