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먹을 수는 없어


입시제도의 변천사까지는 아니어도, 대학 입시가 얼추 어떻게 변해왔는지는 안다. 본고사에서 예비고사,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 이름만 바꿨지 그다지 쓸모 있는 학생 고르는 방법은 아니었던 것 같다. 기억하건대 가장 웃기는 건 체력장이었다. 고입 연합고사 200점 만점에 20점, 대입 학력고사 340점 중에 20점이 이른바 체력검정 점수였다. 체력으로 점수를 매기고, 그것이 당락에 영향을 준다는 건 상당히 불공정한 게임이다. 그래서 감독 선생님들은 어지간하면 20점 만점을 주기 위해서 ‘적당히’ 채점을 하곤 했다. 문제는 신체장애인 친구들이었다. 장애 때문에 검정을 할 수 없는 이들에게 선심 쓰듯 15점이라는 기본점수를 주는 게 고작이었다. 참말 어른들이 저지르는 개 같은 경우의 제일 윗길에 오를 처사였다. 얼렁뚱땅 뛰어도 대개는 20점을 받는 상대들에게 5점을 까고 들어가는 경쟁이 얼마나 불리했겠는가. 요즘 같으면 당장 인권위원회에 고발당할 사안이 아닐까.

 

그때 학력고사는 실업 과목이 필수였다. 여러 산업 중에서 선택했다. 대개는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상업, 공업을 골랐다. 전국적인 대세였다. 돈 계산하는 상업과 제품 생산하는 공업이 제일 유망한 실업이었으니까. 바닷가 도시나 농업 지역에서 간혹 수산업과 농업을 선택하는 학교가 있는 정도였다. 광업은 사양산업이어서 극소수의 학교에서나 골랐을 뿐이었다.

 

내가 다니던 서울의 학교는 당연히 상업, 공업이었으나 나는 농업을 골랐다. 호기심 때문이었다. 아는 재수생 형이 농업을 공부하는 걸 보고 자유 선택이 가능하다는 걸 알았던 것이었다. 교과서도 없어서 종로서적에서 간신히 참고서를 구했다. 그날 밤, 나는 그 책을 펴들고 밤을 새웠다.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였다. 내가 먹는 닭과 돼지, 쌀과 보리와 감자, 호박과 사과와 포도의 ‘이력’이 빼곡하게 들어 있는 엄청나게 재미있는 책이었다. 닭의 산란을 촉진하기 위해 밤새워 불을 켜두거나, 돼지를 겨우 1년만 길러서 잡는다는 기술을 읽으며 마음이 아팠다. 소나 말이 새끼를 사람보다 더 오래 품는다는 걸 알고 그 어미들의 마음을 다시 생각해보기도 했다.

 

달콤한 포도 한 송이를 잘 기르자면 일년 내내 가지 치고 비료 주고 솎아내는 고단한 노동의 연속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내 입에 들어오는 모든 것의 역사를, 말하자면, 농업 교과서가 일러주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시험 당일, 다음과 같은 손쉬운 문제를 틀려버렸지만.

 

문)다음 중 자두나무를 고르시오. 그러고선, 지문으로 비슷비슷한 나무의 실루엣이 그림으로 나와 있었다. 자두나무를 실제로 본 적이 없는 내게는 너무도 어려운 문제였다. 나는 참고서 한 권으로 농업을 배웠지만, 평생 그 여운이 남아 있다. 쌀 한 톨이나 고기 한 점의 이면을 보는 시선을 갖추게 된 것이라고나 할까. 그 시절, 농업 교과서를 쓰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컴퓨터와 인터넷, 인공지능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학교 실업 교육에서 절대 빠뜨릴 수 없는 것일 테다. 그렇지만 도시에 살든, 농촌 학생이든 농·축·수산업을 배우는 일은 무효한 것이 절대 아닐 것이다. 먹어야 사는 게 인간의 숙명이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은 훌륭한 ‘무엇’이지만 먹을 수는 없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