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칼럼

[몸으로 말하기] 남자가 왜 거기서 나와

모리스 베자르 안무의 ‘볼레로’를 추는 남자 무용수 조르주 돈.

 

1980년대 중반에는 남성 무용수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은 편이었다. 남자가 춤추는 것에 대한 세간의 선입관과 편견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나의 경우만 해도 까까머리 고딩시절 사촌 누나가 운영하던 무용학원에 우연히 갔다가 춤을 시작했고,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학교 무용학과에 진학했다. ‘나도 모르게 그만’ 움직임의 매력에 빠져 남성 무용수, 안무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당시 대학교 무용학과는 보통 세 개의 전공(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으로 나뉘는데 각 학년에 남학생은 2~3명뿐이었고, 군 복무로 휴학이라도 하면 전 학년 다 합쳐도 남학생은 6명 내외였다. 남성 무용수가 귀하다 보니 무용학과 남학생들은 장르 불문하고 전공과 상관없이 모든 공연에 출연했다. 여학생들보다 무대에 오를 기회가 많은 만큼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무대도 있었고, 그냥 서 있거나 무대를 왔다갔다만 해도 되는 공연도 있었다. 사실 무대에 오르는 순간에는 연습한 만큼 춤에 대해 진실하고 정직해야 하는데, 학창시절의 무대에서 그러한 환경만 누린 것은 아니었다.

 

요즘은 순수예술인 무용에 대한 인식이나 편견이 지나온 세월과 달리 바뀌어 가고 있음을 체감한다. 30여년 전만 해도 무용수는 방송국무용단 백댄서 정도로 치부되곤 했지만, 몇 년 전 무용을 주제로 한 서바이벌 형태의 방송 프로그램이 편성되면서 팬덤을 형성하기도 했다. 어렵기만 했던 순수예술 무용의 대중적 파급효과에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방송에서 남성 무용수의 멋지고 화려한 움직임이 단순히 오락성 잔재주 정도로 여겨질까 우려되기도 한다.

 

‘발레는 남성이다’라고 했던 프랑스 국민안무가 모리스 베자르의 ‘20세기발레단’은 여성 위주의 발레를 남성 위주로 바꾼 대표적인 무용단이다. 유럽 발레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고, 남성 무용수의 예술미와 관능미를 충분히 부각하면서, 20세기 초반 발레 뤼스가 선보인 남성 위주의 춤을 부활시켰다. 스타급 남성 무용수들로 구성된 전설적인 현대발레단으로 기록된다. 모리스 라벨의 음악은 베자르의 파격적인 주제와 개혁적인 안무 구도인 남성 무용수 솔로작 <볼레로>로 세계의 이목을 받았다. 1877년 초연 후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백조의 호수>도 이제는 남자 백조들로 가득 채워진 매튜 본 안무 버전이 가장 먼저 매진되는 등 세계적인 무용작품으로 손꼽힌다.

 

루이 14세가 남성 무용수로 처음 무대에 오른 <태양왕>이 역사로 남고, 효명세자의 궁중무용 <춘앵전>이 기록으로 전승되듯이, 춤을 품은 남자가 ‘왜 거기서 나와도’ 되는 무대를 앞으로도 더욱더 기대한다.

 

<김성한 세컨드네이처 댄스컴퍼니 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