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2004년 잡지 ‘아이큐점프’에 연재된 김수용의 만화 <힙합>은 당대 최고 인기작이었다. 단행본 24권이 200만부나 팔렸다. 작가가 설명한 힙합의 4요소, 랩·디제잉·브레이크댄스·그라피티 중에서 브레이크댄스에 집중한 만화였다. 나머지는 당시 한국에 낯설었다. 19세 주인공 성태하가 친구들과 춤을 배워 아시아대회 우승에 이르는 성장 스토리. 윈드밀·헤드스핀·프리즈 같은 현란한 춤 동작을 널리 알려 브레이크댄스의 인기를 끌어올리는 데 한몫했다. 그 이전 박남정·서태지와 아이들·현진영·듀스·젝스키스 등은 이 춤으로 한창 떴다.
브레이크댄스는 1970년대 초 미국 뉴욕에서 생겨났다. 힙합의 창시자로 불리는 자메이카 출신 DJ 쿨허크가 브롱크스 지역의 클럽에서 음반을 틀 때 간주(브레이크) 부분을 연속 재생하는 재주를 선보였는데, 그 비트에 맞춰 춤추는 것을 ‘브레이킹’이라 했다. 그 춤을 추는 젊은이를 브레이크 보이(break boy)라고 불렀고 줄임말로 비보이(b-boy)가 됐다. 비보잉은 브레이킹과 같은 말로 통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지난 8일 브레이크댄스를 2024년 프랑스 파리 하계올림픽의 정식 종목으로 채택했다. 공식 명칭은 ‘브레이킹’이다. 1970년대 미국 힙합 선구자들이 불렀던 이름이다. 파리 올림픽 브레이크댄스 종목에는 남녀 금메달 1개씩이 걸린다. 각 16명의 남녀 국가대표가 출전해 일대일 토너먼트 방식으로 우승과 메달 색깔을 가린다. 도시 한복판에서 젊은이들이 펼치는 스트리트댄스 배틀이 지구촌 최대 스포츠 축제인 올림픽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한국의 브레이크댄스 실력은 2001년 첫 우승 이후 2010년까지 세계 대회를 휩쓴 정상급이라 올림픽 메달을 충분히 기대할 만하다. 국제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덕에 이번 정식 종목 채택의 계기가 됐던 2018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청소년 올림픽에서 김예리 선수(21)가 여자부 동메달을 따기도 했다. 종주국 미국은 최강이고, 비보이가 500만명인 중국이나 국립 비보이팀까지 생긴 프랑스도 만만찮다. 그래도 올림픽 무대라면 당당히 도전하고 겨룰 수 있다. 거리와 클럽에 있던 젊은이들이 이젠 올림픽 국가대표를 꿈꾸게 됐다.
차준철 논설위원 | cheol@kyunghyang.com
'문화예술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기호의 미니픽션]써 본다, 그때처럼 ‘메리 크리스마스’ (0) | 2020.12.18 |
---|---|
[창작의 미래]‘한배에 탄’ 창작자와 플랫폼의 상생전략 (0) | 2020.12.14 |
[몸으로 말하기]풍부한 문화코드가 만든 팬덤 (0) | 2020.12.03 |
[디자인 읽기]‘오감도’는 타이포그래피 실험이다 (0) | 2020.11.25 |
[몸으로 말하기]진솔한 소통의 거장, 피나 바우슈 (0) | 2020.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