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칼럼

[창작의 미래]‘한배에 탄’ 창작자와 플랫폼의 상생전략

“한배에 탔다”는 말이 있다. “인 에아뎀 에스 나비(in eadem es navi)”라는 라틴어 격언을 옮긴 말이다. 로마의 정치인 키케로가 즐겨 썼다나. 서로 좋건 싫건, 배가 가라앉으면 같이 망하고 배가 목적지에 닿아야 산다는 뜻이다. 플랫폼과 창작자도 마찬가지일 터다.

 

그런데 같은 배에 타도 이해관계가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제는 추억의 영화가 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타이타닉>이 이런 주제였다. 소설가 줄리언 반스는 노아의 방주에 몰래 탄 좀벌레 이야기를 썼다. 1781년에 일어난 노예선 ‘종’의 사건은 극단적인 경우다. 선장은 자기 이익을 위해 같은 배에 타고 있던 노예들을 바다에 던졌다. 훗날 화가 윌리엄 터너가 ‘노예선’이라는 작품으로 그렸다. 예술가들이 이런 이야기를, 경영자가 ‘한배에 탔다’는 격언을 좋아하는 현상도 흥미롭다.

 

창작자 입장에서 플랫폼에 대해 생각하던 참이다. 예를 들어, 조회수나 실시간 시청률이 높게 나오는 쪽보다 독자나 관객의 기억에 남는 쪽이 창작자에게 대체로 이익이다. 무슨 불멸의 작품을 남기고 예술사 교과서에 이름을 올리고 싶은 명예욕(나라면 이번 주 로또에 당첨되는 쪽에 걸겠다) 때문이 아니다. 창작의 ‘공급탄력성’ 때문이다.

 

작품을 구상하고 준비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일단 연재가 시작되면 반응이 별로라도 이야기의 방향을 바꾸거나 중단하기도 힘들다. 작품이 예상 밖으로 인기여도 문제다. 후속작과 스핀오프를 서두르라고 플랫폼이 채근해도 작가는 뾰족한 수가 없다. 김장철에 닥쳐 부랴부랴 배추를 뽑고 무를 심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탄력성으로 말하면 창작물은 공산품보다 농작물에 가깝다. 작가는 단기 성과보다 중장기적인 반응에 신경쓰는 편이 낫다. 그렇다고 단기 노출을 포기할 수도 없다.

 

결국은 개인 브랜드 관리 문제다. 플랫폼과 시장의 요구만 따라가면 작가가 자기 브랜드를 관리하기 어렵다. 반대로 자기 작품만 하겠다며 고집부리는 작가는 플랫폼을 통해 독자와 관객을 만날 기회를 놓친다. 어쩐담?

 

여러 해 고민한 끝에 현재 내 생각은 ‘캐릭터의 브랜드’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작가에게 무슨 일이 생기거나 수요가 갑자기 늘어나도 플랫폼은 대응할 수 있다. 미디어믹스도 가능하다. 자기가 캐릭터의 원조 창작자임을 내세울 수 있으니 작가도 브랜드 관리에 좋다.

 

탁상공론은 재미없다. 내가 요즘 틈날 때 들여다보는 데이터가 있다. 대세는 캐릭터. 독자는 캐릭터를 원한다는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내가 어떤 조사를 했나? 여기서부터는 다음 칼럼에 말씀드려야 할 것 같다.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