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무서운 식탁 위의 월드컵


25. 무슨 숫자일까. 놀랍게도 한국의 식량자급률이다. 세계 꼴찌다. 자급률 100%가 넘는 쌀을 포함해도 그렇다고 한다. 그나마 쌀 자급률이 높은 것도 밀과 같은 수입곡물로 만든 빵과 국수, 과자류 때문에 밥을 덜 먹는 까닭이다. 식당에 가보면 원산지 표기가 되어 있는데 올림픽을 하는 것 같다. 각종 재료의 수입국가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식당에서 수입품을 많이 쓰는 것은 실제 그런 면도 있고, 다른 면으로는 일종의 착시 현상이다. 당국의 원산지 표기 대상 의무가 점점 넓어지면서 식당에선 써 붙여야 할 품목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식당에서 재료상에 주문을 하면 일단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해당 품목의 가장 싼 걸 공급하는 게 원칙이다. 당연히 국산보다 싼 수입, 수입 중에서도 더 싼 수입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참깨나 참기름의 경우 과거 중국산이 싼 제품으로 유통되었지만 이제는 고급에 속한다. 수단이나 인도 등 더 싼 나라의 물건을 들여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참깨와 그나마 비슷한 게 중국산이니, 과거 언론에서 다루던 ‘중국산과 국산 참깨 구별법’ 같은 기사는 이제 나오지 않는다. 대중식당에서 제육볶음 같은 데 참깨가 소복하게 뿌려져 있다면 그건 아마도 인도산 같은 것일 테다. 중국산도 고급이고 비싸니까.


생선도 그렇다. 어디서 그런 걸 다 수입해 오는지 기막히다. 가자미도 미국산이 흔하고, 병어는 인도산일 때가 많다. 수입 갈치가 아프리카산이라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박대 같은 생선조차 다수가 대서양에서 들여온다. 우리는 관습적으로 식재료에서 중국산을 폄하하는 시선이 있는데 이제 수정해야 한다. 중국산은 어쩌면 우리와 비슷한 바다와 기후를 공유하는지라, 그나마 국산과 흡사한 ‘고급’ 식재료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닌 세상이다.


삼겹살도 워낙 많이 먹는데, 국산 가격이 만만치 않다 보니 구이를 제외하면 일반 요리용은 상당수가 수입이다. 수입 국가도 워낙 다양해 전 세계를 아우른다. 흥미롭게도 그 국가가 월드컵 16강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독일, 프랑스, 스페인, 칠레, 미국, 멕시코,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삼겹살을 ‘정육’이 아니라 ‘기름’으로 취급하는 나라들이다. 그래서 값이 싸고, 한국의 주요 수입 대상국이 되었다. 다음 월드컵 16강을 예측하는 일도 어렵지 않다. 저 나라들에다가 한국을 끼워 넣으면 된다.


가끔 무서워질 때가 있다. 이른바 식량패권이니 식량의 무기화 같은 것이 과장이라는 말이 있지만, 누가 그런 걸 하고 싶어서 하겠는가. 불가피하게 식량수출을 통제할 위기가 닥칠 수 있다. 우리가 기후변화를 걱정하는 이유 중에는 식량이 포함되어 있다. 기후변화가 기존의 식량 생산 패턴에 큰 충격을 준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저 먹을 게 줄어들면 수출을 하겠는가. 우리는 반도체를 팔고 식량을 포기한 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배가 고플 때 반도체를 먹을 수 없다. 


어느 영화 카피처럼 “우리는 또 방법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이 가능할까. 정말 그럴까. 그저 관전만 하고 있어도 될까. 나는 두렵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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