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스티로폼 찌개

예전 시장에서는 스티로폼 사용량이 적었다. 수산시장에서는 나무 상자가 많이 쓰였고, 채소시장에는 종이상자나 나무상자가 주력이었다. 이제는 스티로폼이 많이 쓰인다. 냉장, 냉동에 스티로폼만큼 싸고 좋은 재질이 없기 때문이다. 요새는 새벽배송이라고 하여 저마다 아침 일찍 음식이며 재료를 배달해대는데, 포장을 끌러보면 기가 탁 막힌다.

 

 

내용물보다 훨씬 큰 스티로폼 상자에 재활용 수거도 안되는 보냉재, 어떤 경우는 내용물의 흔들림을 방지하려는지 작은 스티로폼 조각이 추가로 들어 있다. 생활이 편리해지고 있으나 그 후과는 어쩌려는지 모르겠다. 식당을 하면서 가장 부담스러운 건 포장재 처리다. 수산물, 육류가 들어온 스티로폼 상자를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재활용으로 버리고 있으나 실제로 재활용이 잘되지도 않는다. 더구나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 있고, 내용물의 찌꺼기가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지 않아서 재활용이 어렵다. 재활용할 충분한 인프라도 없다. 스티로폼은 참으로 편리하고 기능이 뛰어나지만 곧 거대한 재앙이 되어 인간을 공격할 게 분명하다. 배달되어 온 스티로폼은 대개 구석이 닳아 있다.

 

배달과정에서 마모되고 상처입는다. 그 가루(작은 알갱이)가 많이 떨어진다. 하수구로 흘러들어갈 수밖에 없다. 수산시장에 가보라. 얼마나 많은 스티로폼 알갱이가 하수구로 흘러가는지. 식당에서는 음식물 찌꺼기를 모아서 별도로 처리하게 되어 있는데, 이때 개수대에 모인 찌꺼기도 같이 버린다. 그 안에는 생선 등을 꺼낼 때 묻어온 스티로폼 알갱이도 들어 있다. 그걸 일일이 골라낸다고?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작업에는 모두 비용이 든다. 직원이 그걸 골라내는 일 자체가 비용이다. 겨우 노동비용을 감당하고 있는 식당들에 이런 작업이 우선시될 리 없다. 음식물 찌꺼기의 상당량은 매립되지만, 어느 정도는 잔반으로 처리돼 가축 먹이 등으로 재활용된다. 바닷가에서 구출된 바다거북의 배에서 다량의 스티로폼 조각이 발견되었느니, 물고기 배를 갈라보면 그렇다느니 하는 기사가 나오는데, 음식물 찌꺼기의 사료 공급으로 스티로폼을 비롯한 미세플라스틱이 얼마나 축적되는지 연구 결과도 없을 것이다. 당장의 노동에 지친 요리사들에게 그걸 분류하고 처리하라고 하는 건 현실적이지 못하다.

 

한동안 튀김 등을 하고 남은 기름을 몰래 하수구에 버리는 일이 많았다. 이제는 드물다. 왜냐하면 업체에서 수거해 가도록 제도화하고 있는 까닭이다. 수거하면서 소정의 현금을 제공한다. 수거업체가 식당에 지불하는 것이다. 이렇게 된 이후로 폐식용유의 수거율은 매우 높아졌다. 무엇이든 제도라는 건 동력을 가져야 한다. 폐식용유는 현금 지원이었다. 스티로폼 등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피할 수 없는 국면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세금이 잘 쓰이는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스티로폼 등의 사용량을 줄이고 재사용 가능한 대체품을 찾아야 하고, 그 구매에 세금을 지원하면 활용률이 최대로 높아진다. 스티로폼 알갱이가 바다로 가고, 그것을 먹은 생선으로 만든 찌개를 먹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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