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

바람 그리고 조용필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세월 가면 그때는 알게 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1997년 봄 어느 날 ‘가왕’ 조용필이 기자를 찾았다. 퇴근길에 서울 방배동 그의 집으로 달려가니 새 노래 몇 곡을 들려줬다. 16집의 타이틀곡을 꼽아보라는 주문이었다. 가문의 영광(?)으로 알고 적극적으로 추천한 노래가 ‘바람의 노래’였다. 특히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에 꽂혀서 함께 소주 몇 병을 비웠다. 조용필 역시 내심 ‘바람의 노래’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조용필은 바람의 가수다. 그의 목소리는 빈 들판을 떠도는 삭풍이고, 대숲을 흔드는 미풍이며, 갈대숲에서 불어오는 소슬바람이다.

‘간밤에 불던 바람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따스한 꽃바람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 그 사람 이름은 꽃바람’(꽃바람)이라고 노래하다가 ‘바람 속으로 걸어갔어요/ 이른 아침의 그 찻집’(그 겨울의 찻집)으로 귀결된다. 어디 그뿐인가. ‘바람 소리처럼 멀리 사라져 간 인생길/ 우린 무슨 사랑 어떤 사랑 했나’(어제, 오늘, 그리고)라고 노래하다가 ‘바람이 불어오면 귀 기울여봐/ 작은 일에 행복하고 괴로워하며/ 고독한 순간들을 그렇게들 살다 갔느니/ 착한 당신, 외로워도 바람 소리라 생각하지마’(바람이 전하는 말)라고 위로한다.

8집 앨범 <허공>에 수록된 ‘바람이 전하는 말’은 잠시 표절 시비도 있었다. 작사가인 양인자가 마종기의 시 ‘바람의 말’에서 힌트를 얻어 만든 노래였다. 마 시인은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하지마’라고 썼다. 2000년대 초반 양씨가 미국에 살고 있던 마 시인에게 전화해서 양해를 구했다는 후문이다.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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