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

백만송이 장미

 

봄꽃이 지천일 때는 꽃의 소중함을 모른다. 꽃들이 지쳐 시들었을 때 장미는 핀다. 그래서인지 유월의 장미는 강렬하면서도 도도하다. 그런 장미가 지천으로 등장하는 노래가 있다.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사랑을 할 때만 피는 꽃 백만송이 피워 오라는/ 진실한 사랑 할 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 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심수봉이 ‘백만송이 장미’로 번안하여 부른 노래로 러시아의 가수 알라 푸가초바가 1982년 발표했다.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가 조지아의 천재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가 프랑스 출신 여배우와 사랑에 빠졌던 일화를 바탕으로 가사를 썼다.

‘그는 꽃을 사랑하는 여배우를 사랑했다네/ 그래서 집을 팔고, 그림과 피도 팔아/ 바다도 덮을 만큼 장미꽃을 샀다네/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붉은 장미.’

노랫말처럼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가난한 화가 피로스마니는 여배우 마르가리타를 위해 수만 송이 장미를 사서 바치며 사랑을 고백한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잠시였고, 여배우는 가난한 화가 곁을 떠났다. 결국 피로스마니가 그린 ‘여배우 마르가리타’(사진)만 세상에 남았다.

이 노래는 원래 1981년 라트비아의 한 방송사가 주최한 가요제에 출전하여 우승한 듀엣 가수 아이야 쿠쿨레와 리가 크레이츠베르가 부른 노래였다. ‘마라가 딸에게 준 삶’이라는 제목의 노래로 독일과 러시아에 짓밟힌 라트비아의 슬픈 역사를 모녀 관계에 빗대서 부른 곡이다. 말하자면 민중가요가 시대적 상황 때문에 사랑 노래로 뒤바뀌어서 유행한 셈이다.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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