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새로운 시리즈 영화의 출현을 보며

매년 5월이면 할리우드에서 출발한 프랜차이즈 영화들이 한두 편씩 연착륙을 시작한다. 올해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시작된 성공은 <데드풀 2>로 연속되고 흥행은 <앤트맨 앤 와스프>로도 이어질 기세다. ‘손가락 하나 튕기는’ 서사행위의 의미는 <어벤져스>를 봐야만 알 수 있는데, 이 행위소는 <데드풀>이나 <앤트맨>에서도 유효하다. 얼핏 보면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어벤져스’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 <데드풀 2>는 ‘데드풀’ 두 번째 이야기, <앤트맨 앤 와스프>는 ‘앤트맨’ 두 번째 이야기로 서로 독립되어 있는 듯하지만 교묘하고도 섬세한 짜임새로 이 세 작품은 모두 연결된 것이다. 좋게 말하자면 하나를 보고 다른 하나를 보면 재미가 배가되고 나쁘게 말하자면 죄다 파생상품이라 하나를 보고 나면 둘 셋, 더 보도록 유인된다. 마치, 같은 회사 제품으로 골라 담아야 할인이 되는 행사처럼 이야기들이 닮아 있고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영화 <앤트맨 앤 와스프>의 한 장면.

 

어느새, 시리즈 영화, 프랜차이즈 영화는 우리 영화 문법과는 무관한, 할리우드에서나 가능한 영화 제작 관습으로 여겨졌다. 그도 그럴 것이 <반지의 제왕> <헝거 게임>과 같은 판타지도 그렇고, <매트릭스>나 <스타워즈> 같은 SF물 등 성공한 시리즈물은 전부 할리우드산이었다. 할리우드 시리즈물은 단순히 이어지는 연속성만이 아니라 시간을 거슬러 프리퀄이 되기도 하고, 아예 이야기를 뽑아 스핀 오프를 만들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최근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중 단일 작품으로 독립성을 가진 작품이 거의 기억나지 않을 정도다. 특히 상업적인 대중영화 안에서는 프랜차이즈와 시리즈가 매우 잘 어울리는 서사기법처럼 여겨질 정도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2018년 한국 영화계에 중요한 변화가 느껴진다고 말할 수 있다. 6월에 개봉해서 300만 가까운 관객을 동원한 영화 <탐정: 리턴즈>는 2015년 개봉했던 영화 <탐정: 더 비기닝>의 후속작이다. 주인공의 캐릭터나 그가 맺고 있는 관계도가 고스란히 유지되는 가운데 사건과 몇몇의 인물들이 첨가되는 방식이다. 영화는 공공연하게 시리즈물로 거듭날 것임을 표방하고 있다.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뒀으니 ‘탐정’ 3편도 만들어질 듯싶다. 굳이 안 만들 이유가 없어 보인다.

 

‘탐정’의 프랜차이즈화는 어떤 점에서 한국의 시리즈 영화 제작의 오래된 관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시리즈가 될 만한 영화 한 편을 초계기처럼 일단 띄워 보고, 잘된 경우엔 그 캐릭터와 특성을 살려 2편, 3편으로 이어가는 방식 말이다. <조선명탐정>이 그랬고, 이에 앞서 <가문의 영광> <두사부일체>류의 조폭 코미디 영화들이 그랬다.

 

어떤 점에서, 이러한 프랜차이즈 제작 방식은 안정과 위험을 둘 다 가지고 있는데, 안정이 성공을 기반으로 그러한 면을 부각시키는 것이라면 위험은 그것이 오히려 관객들의 피로와 싫증을 가져오기 십상이라는 사실과 연관된다. 시작이 훌륭했지만 결말이 시시했던 것은 대표적 공포 시리즈였던 <여고괴담>의 성장과 실패 과정에서도 여전히 반복되는 현상이었다.

 

그런 점에서, 영화 <마녀>와 <신과 함께>가 시도하고 있는 시리즈 제작 방식은 사뭇 독특하다. 두 영화는 기획 단계부터 시리즈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마녀>의 영어 제목은 <Part 1: The subversion>으로, 시리즈물의 첫 번째라는 사실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이번에 개봉한 1편이 3편 중 첫 번째에 해당한다는 것을 아예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금껏 성공한 영화의 플롯 공식을 재활용해 2편과 3편을 만드는 방식과는 시작부터 다르다. 이를 입증하듯 올해 개봉한 <마녀>는 주인공 소녀의 등장과 그녀가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아가는 과정에만 집중한다. 아직 본론은 시작도 하지 않았음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것이다.

 

지난해 겨울 <죄와 벌>을 개봉한 이후 올해 여름 <인과 연>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 <신과 함께> 역시 애초에 2부작으로 나누어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가만 보면, 올여름에 개봉하는 한국 영화 중 세 편이 프랜차이즈 및 시리즈 영화다. 2000년대 초 조폭 코미디 시리즈물들이 급속히 사라져간 이후 매우 오랜만에 선보이는 시리즈 영화의 선전이라고 볼 수 있다.

 

시리즈, 프랜차이즈 영화의 제작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영화 소비 시장이 안정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영화를 소비하는 관객들에 대한 신뢰도가 그만큼 높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매년 1000만 이상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가 등장하고, 1년에 영화를 보는 관객 인구가 2억명을 넘는 시장이 바로 우리나라다. 세계 어느 곳을 살펴본다고 해도, 이렇게 영화를 많이 보는 나라가 드물고, 자국 영화를 이처럼 많이 보는 관객도 드물다. 대개 하나의 독립된 작품으로 한 해 텐트폴 영화의 자리를 노리던 한국 상업영화의 스펙트럼이 이제 할리우드 영화 제작 흐름을 벤치마킹해 한국형 프랜차이즈 영화로 거듭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미리 기획된 시리즈 영화들이 과연 어떤 성과를 거둘지 그 결과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짐작하다시피, 점차 한국 영화의 관객 동원율이 떨어지고, 마블을 비롯한 웰메이드 할리우드 시리즈 영화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고 있다. 마블의 영화들이 인기를 끌긴 했지만 마블의 모든 영화가 올해처럼 사랑을 받은 적도 없다. 한국의 상업영화들이 고전적 방식으로는 기술과 자본의 우위를 앞세운 할리우드 영화의 공세를 버티기 힘들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형 프랜차이즈 영화는 한국 대중영화의 패러다임에 대한 새로운 시도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할리우드를 닮아 가되 좀 다른 방식으로 가는 것, 이론적으로 그럴 듯해 보이는 이러한 시도가 과연 어떤 결말을 맺게 될지 관심 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