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

수난 당하는 죽창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선출마를 선언하면서 거론한 죽창가는 민주화 항쟁의 역사와 맥을 같이하는 노래다. 2019년 조국 전 민정수석은 “SBS 드라마 <녹두꽃> 마지막 회를 보는데, 한참 잊고 있던 이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나왔다”면서 그의 페이스북에 죽창가를 거론했다. 윤 전 검찰총장이 “죽창가를 부르다 한·일관계가 망가졌다”고 말한 것은 사실상 조국 전 수석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지는/ 녹두꽃이 되자 하네// 이 산골은 날라와 더불어/ 새가 되자 하네 새가/ 아랫녘 윗녘에서 울어 예는/ 파랑새가 되자 하네// … 청송녹죽 가슴으로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노랫말은 고 김남주의 시 ‘노래’가 원전이다. 1989년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된 시선집 <사랑의 무기>에 수록된 시로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시에 광주에서 활동하던 화가 김경주가 곡을 붙였고,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멤버였던 문진오가 노래를 불렀다. 이후에 안치환이 부르면서 좀 더 대중적으로 알려졌지만, 운동권 가요의 계보 속에 놓여 있는 노래다.

 

김남주는 100여년 전 우금치 전투에서 희생당한 동학농민군들의 절규를 서정적이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노래한다. 김 시인은 1980년 신군부가 간첩 사건으로 조작한 ‘남민전 사건’ 조직원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가 1988년 1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시인이라는 명칭 대신에 전사라고 불렸던 김남주였지만 오랜 감옥 생활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어 1992년 타계했다.

 

이 곡은 2000년 그의 시에 곡을 붙인 안치환의 헌정 앨범 <Remember>에 수록됐고, 같은 해 5월 광주 중외공원에 ‘노래’가 새겨진 시비가 제막됐다.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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