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야장을 깔다

이십여년 전 회사 다닐 때 여름이 오기를 늘 기다렸다. 딱 이맘때다. 해지면 호프집 앞에 깔리는 임시 탁자에서 마시는 한 잔의 생맥주 때문이었다. 7월이 무르익으면 해가 져도 무덥다. 그래서 딱 이즈음이다. 날씨는 선선하지도 덥지도 않지, 목은 마르지, 생맥주 마시기에 그만큼 좋은 조건도 없다. 안주야 북어나 치킨 몇 조각이면 그만이었다. 시내 곳곳, 아니 전국이 요즘 야외 생맥주 대목이다. ‘야장’이라고도 부른다. 업계에서는 전문(?) 용어로 ‘야장 깐다’고 한다. 밤에 탁자 깔고 장을 벌인다는 뜻이겠다. 생맥주 가게는 요즘이 대목이다. 한 해 벌이의 상당 부분을 이때 벌어들인다고도 한다. 문제는 불법 논란이다. 도로는 시나 나라 것이니 무단점유가 되고, 식품위생법에도 저촉된다. 영업허가 조건을 위반하기 때문이다. 영업장의 허가된 장소란 합법적인 공간에 지은 물리적 실체만을 뜻한다. 영업하면서도 늘 불안하다. 차라리 적당한 액수의 도로 점유비를 내고 허가를 받아 장사하고 싶어한다. 법적인 해석과 뒷받침이 필요하고 다른 업종 가게와의 이해관계도 조절해야 한다. 생각보다 상당히 복잡하다. 그래서 매년 어정쩡하고 찜찜하게 야장을 까는 업주들의 속은 불안에 떤다. 벌어먹어야 하는 업주 사정에 보면, 안타깝다. 법의 엄정함에 비추면 또 이게 불법인 경우가 많으니 참 답답하다.

 

서양은 어떤가. 본디 광장 문화가 있는 유럽은 카페가 발달했다. 카페란 대개 음식도 같이 판다. 우리 시각에서 보면 그냥 레스토랑이다. 광장 옆이나 골목의 카페와 레스토랑이 도로를 점유하고 영업할 수 있도록 잘 설계되어 있다. 도로 점유비를 받고 합법적으로 영업한다. 카페는 단순히 영업장이 아니라 일종의 공공성을 띤다는 개념이 들어 있다. 목을 축이고, 고픈 배를 채울 수 있는 공간으로 시민에게 기능하기 때문이다. 타이베이에 가면 주랑(柱廊)이 도시 곳곳에서 보인다. 도로와 건물 사이에 기둥을 세우고 비와 햇빛을 피할 수 있는 구조물이다. 주랑 건축 비용은 건물주가 낸다고 한다. 대신 그 주랑으로 인해서 생긴 공간을 활용한다. 이곳에 탁자를 깔고 밥도 먹고 차도 마실 수 있다.

 

도시 설계의 개념이 달랐던 우리는 이 지점에서 차이가 생긴다. 주랑을 깔 공간도 없고, 인도는 좁다. 그래도 생각을 달리하면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다. 나는 서울의 몇몇 ‘야장’은 명물로 밀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을지로의 생맥주 골목이나 종묘 옆 고기골목을 처음 구경한 내 친구들은 하나같이 입을 떡 벌렸다. 현실세계 같지 않은 곳이라고 했다. 외국인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열광한다. 고급스러운 공간을 외국인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보면 오산이다. 그들은 오히려 이런 서울만의 그림에 미친다. 여행을 마치고 제일 좋았던 경험을 꼽으라면 대개는 그 야장의 기억이다. 원컨대, 이런 공간을 키우겠다고 나설 일도 아니다. 법적 근거를 마련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골목 앞에 커다랗게 아치문을 세우고 ‘○○문화의 거리’라고 명명하는 것만 안 하면 된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이런 골목들을 살릴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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