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속 헛헛한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 게 포장마차다. 정식으로 밥상을 받기는 그렇고, 간단히 속을 달래기 위해 들르는 곳이다. 이런 것의 통계는 없겠지만 눈여겨보면 제일 인기 있는 건 떡볶이와 오뎅이다. 값이 싸고, 간단히 먹을 수 있어서다. 요즘 같은 겨울이면 단연 오뎅이다. 오뎅은 ‘어묵꼬치’라고 고쳐 부른다. 오뎅은 어묵뿐만 아니라 달걀, 힘줄, 무, 곤약 같은 온갖 재료를 넣어 끓이는 일본 요리다. 반면 우리나라는 오뎅이라고 해도 99%는 어묵을 꿴 꼬치이므로 어묵꼬치라고 불러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후루룩, 종이컵에 국물을 퍼서 마시고 어묵을 씹는다. 단돈 1000~2000원이면 허룩해진 속이 든든해진다. 뜨거운 국물이 식도를 타고 흘러들어가며 아직 우리가 살아있음을 느낀다고나 할까.
옛날보다 어묵 맛이 덜하다고들 한다. 기분이 아니라 사실이다. 재료가 달라졌다. 원양에서 잡은 이름도 희한한 생선을 주로 쓴다. 연근해에서 잡은 것들은 비싼 데다 엄청나게 커진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서다. 예전에는 제법 괜찮은 어물이 어묵의 원료가 되었다. 조기, 갈치, 전갱이, 정어리, 명태에 온갖 잡어가 쓰였다. 좀 못나서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것들은 어묵 반죽 속으로 곱게 갈려서 들어갔다. 그래서 간혹 씹다보면 생선뼈가 오도독거리기도 했다. 위생은 좀 못했지만 재료만큼은 제법 좋았던 시절이다. 남해안에서는 심지어 아귀까지 넣었다는 증언도 있다. 작은 아귀는 상품성이 없어서 어묵이나 만들었다는 얘기다. 맛이 없을 리 없었다. 기름도 맛을 돋웠다. 고래기름을 썼다는 증언이 있고 소기름과 돼지기름이 주종이었다. 고소함이 일반 식용유에 댈 게 아니었다. 미국산 식용유가 물밀 듯이 들어오면서 기름도 바뀌었다. 이제 우리는 대기업 상표를 보고 마트에서 어묵을 고른다. 시장마다 각기 다른 상인이 직접 만들던 어묵은 거의 사라져버렸다.
어묵은 일본에서 시작된 음식이다. 생선을 곱게 짓이겨서 모양을 빚은 후 주로 불에 구워서 만들었다. 본디 고급 요리에 속한다. 조선통신사의 방문 일기에 어묵이 종종 등장한다. 귀빈 대접을 받은 통신사의 식탁에 오르는 음식이었다. 그때 문헌에 한글의 ‘가마보곶’이라는 명칭이 발견되었다. 가마보코(かまぼこ)란 말인데, 이는 어묵을 이르는 일본어다. 어묵이 산업화의 길을 걷게 된 건 역시 동력이었다. 전기믹서로 재료를 한꺼번에 갈고 더 큰 동력으로 더 많은 생선을 잡으니 어묵으로 쓸 잉여가 생겨났다. 미국이 아시아의 패권을 쥐면서 그들의 튀김용 기름도 함께 싸게 풀렸다. 어묵이 접대용 고급음식에서 거리의 음식으로 바뀐 결정적 계기였다.
또 다가오는 예사롭지 않은 주말이다. 사람들은 분노를 안고 또 광장으로, 거리로 나간다. 어묵 행상이 거기에 있다. 이래저래 쓰린 속, 뜨거운 싸구려 국물을 붓고 싸운다. 언제까지 우리가 거리에서 어묵을 씹어야 할지 모르겠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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