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김밥아짐들

지금 지구촌이 비슷하게 겪고 있는 고통의 근원은 이른바 세계화의 광풍이었다는 분석이 있다. 곳곳에서 모순이 터져 나오고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가 그 예다. 세계 자본의 질서에 대한 분노가 응집되고 있다. 유럽에서는 세계화의 진행과정에서 몸으로 맞서 싸운 이들이 있었다. 매일 거리에 나와 시위했다. 그때 흥미로운 인물이 있었다. 밤 카트(Wam Kat)라는 네덜란드 사람이다. 그는 박사학위를 두 개나 가진 학자인데, 책상에서 논문을 쓰는 대신 거리의 데모대로 나섰다. 단순히 싸움을 치른 것이 아니라 밥을 했다.

 

맞다. 밥이다. 트럭에 재료를 싣고 시위 현장에 갔다. 자원봉사자들의 힘을 빌려 채소를 손질하고 고기를 삶았다. 날씨가 추울 때는 주로 수프를 끓였다. 나눠 먹기 좋고 영양가가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전문 요리사가 아니다. 게다가 요리를 준비할 시간도, 인력도 늘 부족했다. 재료를 사기 위해 모금을 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스스로 요리 솜씨가 엉망이라고 자인한다. “그래도 가장 힘든 건 검문을 뚫고 재료를 현장까지 가져가는 것이었죠”라고 말한다.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시위대는 한 그릇의 음식으로 위로받았다. 그 뜨거운 음식은 결코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연대의 확인이었다. 밤 카트의 요리법은 아주 단순하다. 구할 수 있는 여러 재료를 한 데 섞어 푹 끓이는 것이었다. 맛은? 인공조미료가 들어간 시판용 고체 ‘육수’를 써서 냈다. 그저 먹고 힘을 낼 수 있으면 됐다. 어머니의 손맛은 절대 낼 수 없었지만, 그의 음식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그는 늘 말한다. “재료비는 충분하게 모금됩니다. 세계화에 반대하는 시위대는 가난하지만 도덕심이 있거든요.”

 

 

광주 출신인 친구가 하나 있다. 그는 고등학생 신분으로 5·18 광주항쟁에 참여했다. 하숙집에 있다가 시내에서 계엄군이 사람을 죽인다는 말을 듣고 뛰쳐나갔다. 이동하는 트럭에서 떨어져 팔을 크게 다쳤다. 그는 그 시위를 김밥으로 기억한다. “아짐(아주머니)들이 김밥을 싸가지고 와서 나눠줬지. 우리 새끼들 어쩌느냐고, 불쌍해서 어쩌느냐고 하면서 말이지. 군인들이 총을 쏘고 몽둥이질을 하니까 아짐들이 나섰지. 김밥을 싸들고서.”

 

그때 얻어먹은 김밥의 맛은 그의 혀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고 한다. 촛불집회가 거세지고 있다. 한 친구는 이렇게 페이스북에 올렸다. “내 집은 청와대 앞입니다. 화장실이 필요하거나 용무가 있으신 분, 배가 고프신 분들을 환영합니다.” 엄청난 ‘좋아요’가 쏟아졌다. 거리에서 핫팩을 공짜로 나눠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주는 자원봉사자도 있었다. 광화문에 있는 세월호 유가족 텐트에서는 차와 커피를 서비스했다. 눈물겨웠다. 사람들이 거리에 나서는 건 다시 밤 카트의 말을 빌리면 ‘도덕심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주에 다시 거리에서 다시 수많은 밤 카트와 ‘아짐’들을 만나야겠다. 추운 날씨에 누군가 따뜻한 한 잔의 커피와 컵라면을 건넬 것이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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