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계란의 경고

AI. 공상과학영화 제목으로 오인하기 좋다. 아닌 게 아니라 AI, 즉 조류인플루엔자 관련 보도는 현실세계를 다루는 것 같지 않다. 2000만마리 살처분, 긴급 공수, 백신 확보 비상. 덕분에 국민은 국정농단 정치공부를 하는 와중에 산란계와 육계의 차이, 철새의 이동경로 분석학도 배우고 있다. 몇 해 전에도 AI와 관련한 칼럼을 이 지면에 썼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예상대로 방역선은 뚫리고 살처분이 거의 유일한 대안이 됐다. 그리고는 저절로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게 사실상 정부 대책의 전부다. 국민들은 AI 발생 뉴스를 들으면 체념한다. 끝까지 가겠군, 그렇게 생각한다. 엄청난 숫자의 닭을 살처분하고, 그 부족분을 수입하고 그러겠지 하고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반복되는 일에 감각이 무뎌진 것이다. 계란 값은 계속 오르고 있다. 계란 값을 또 올릴 거냐는 물음에 도매업자들은 시니컬하게 대꾸한다. “계란이 있어야 올리든지 말든지. 우리도 팔 계란이 없다”고.

 

닭도 생명이다. 자연상태에서 몇 년을 산다. 육계는 한 달이 넘으면 이내 도축되어 우리 입으로 들어온다. 산란계는 더 오래 살지만 본디 천수에 턱도 없이 적은 나이에 죽는다. 알 낳는 능력이 떨어지면 도태된다. 이런 얘기를 양계전문가에게 했더니 그의 대답이 이랬다. “차라리 빨리 죽는 게 낫지요. 닭장 보고 나면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좁고 불편한 사육장에서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고, 죽을 때도 살처분이라고 부른다. 생명 존중 같은 것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들에게 우리가 존엄을 보이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먹기 위해 죽이는 것은 ‘도살’이니, 구분을 위해 살처분이라는 말을 쓰는 게 고작이다.

 

 

처분이라는 말을 우리가 가장 많이 쓴 시대는 바로 일제강점기였다. 제국주의 권력의 용어였다. 식민지를 다루는 필살기였다. 독재정권의 전유물이기도 했다. 그들이 저지른 온갖 ‘처분’이 지금 ‘박근혜·최순실 시대’의 토양이 됐다. 그 용어를 가져다가 그대로 쓴다. 아무리 닭이, 소·돼지가 미물이라도 말이다.

 

계란은 어미 몸에서 천천히 만들어진다. 알로 태어나서 다시 병아리로 태어난다. 두 번 태어나는 신기한 동물이다. 그렇게 병아리가 되자마자 암수 구분을 통해서 수놈은 가혹한 최후(이것도 살처분이다)를 맞는다. 암놈이어서 운 좋게 살아남은 닭은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의 이익에 최적화된 양분을 공급받으며 적정한 알을 생산하다가 생을 마친다. 이런 시스템이 현대 양계다. 현대, 과학 이런 말 뒤에 숨은 의미는 미친 듯이 돌아가는 시장이다. 계란 값이 오르기 전, 가게에 들어오는 계란 한 판의 도매가가 4000원대였다. 생명의 정수가 모여 있는(그리하여 완벽한 영양이라고 칭송하는) 계란 한 개에 100원 조금 넘는다. 10년 동안 온갖 물가가 오르는 동안 계란 값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불가사의한 일이다. 계란은 가치에 비해 워낙 싸다.

 

올라가는 계란 값은 영원히 싼 값에 계란을 먹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경고다. 어쩌면 계란이라는 고마운 존재에 대한 인간의 무신경을 다그치는 일일 수도 있겠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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