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소주 5000원 시대

소주 값도 오른다고 기사가 나오고 있다. ‘서민 경제’라는 말에 꼭 붙는다. 한 병에 5000원 시대가 열렸다. 강남 일부이지만 4000원도 그렇게 시작해서 서울의 대세가 됐다. 알코올 함량은 떨어지는데 소주 값은 오른다. 원가 상승에 빈병 보증금 인상 때문이라고 한다. 시민들은 담배처럼 소주 값에까지 세금을 올리는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우리가 많이 마시는 희석식 소주는 세율이 낮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이미 고급 위스키나 맥주와 같은 72%다. 교육세도 추가로 30% 붙는다. ‘서민의 술’이라고 하는 희석식 소주의 세율도 이미 최고점 수준이다. 병당 500원이 넘는 세금이 붙는다. 물론 담배보다는 한참 낮다.

 

예전에 농촌활동을 갔는데 대접한다고 나온 술이 소주였다. 막걸리보다 소주는 고급이라는 인식이 오랫동안 우리에게 있었다. 마포의 돼지고기 문화를 이끌었던 ‘최대포’의 창업주 기록에 의하면, 소주를 마시면 고기 안주가 무료인 시대도 있었다고 한다. 그때 소주는 ‘다루 소주’라고 하여 속칭 ‘막소주’였는데도 그랬다. 말통으로 받아온 소주를 병에 따라서 내는 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주는 고아서 내리는 증류주라는 인식이 있었다. 제조원가가 비싸다고 생각했다. 맑은 술이니 독하게 취하고 싶은 이들에게 어필했다. 당시 여러 통제로 막걸리의 품질이 급락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카바이트 막걸리’라고 하여 마시면 머리가 아프다고 천대받았다. 이 틈에 소주는 시장을 넓혔다.

 

 

희석식 소주는 참 많은 변화를 거쳤다. 지역별 쿼터제가 있어서 다른 지방의 술이 도 경계를 넘지 못했다. 호남선을 타고 귀경하면 열차 판매원이 매번 다른 상표의 소주를 팔았다. 전라도-충청도-경기도-서울권역으로 들어오면서 소주 브랜드가 바뀌었다(그때는 기차 여행이 시간이 길어서 흔히 객차에서 소주를 마셨다).

 

이런 지역쿼터제는 영업권을 법으로 보장해주는 대신 정치자금줄 노릇을 했다고 한다. 목포의 유명한 삼학소주는 당시 정권 눈 밖에 난 김대중 선생에게 정치자금을 줬다는 이유로 공중분해되었다는 건 거의 정설이다.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소주 회사도 부침을 거듭했다. 법 개정으로 소주의 판매권역도 자유화되었다. 전통의 지역 소주 회사가 무너지고 흡수 합병되었다. 거대기업이 소주 시장에 진출, 영업권을 놓고 치열하게 싸웠다. 유명한 전통의 소주 회사들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외국회사에 넘어갔다. 소주는 순전히 우리 국민의 애호 술인데, 경영권은 외국계 회사가 갖고 있는 경우도 많다. 소주 도수가 이제 향을 혼합한 것들은 12도짜리까지 나온다. 소주 맛은 싱거워지는데 값이 오른다. 알코올 중독을 걱정하는 의료인들이나 정책당국은 소주 덜 마시는 사회를 바란다. 그러나 이 미친 시대, 소주라도 마시지 않으면 어쩔 것이냐고 아우성이다. 소주 5000원 시대는 이제 대세가 되는 것일까. 새해부터 주머니가 더 가벼워질 불안에 빠진 많은 이들에게는 참으로 괴로운 소식이다. 소주라도 마음 놓고 마실 수 없는 시절이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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