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겨울요리

겨울 칼바람이 불면 늘 사십 년 전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그때는 얼마나 추웠던지 손발과 볼에 동상이 걸리는 아이들이 숱했다. 싸구려 화섬이나 거친 모직으로 만든 외투가 고작이었고, 오리털 제품은 나오기 전이었다. 나왔더라도 서울 변두리 소년들이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었다. 그 추위에도 노점상이 있었다. 풀빵이나 군고구마 장수였다. 호떡은 대개 화교가 운영하는 어엿한 가게였다. ‘도라무깡’을 개조하거나 벽돌로 화덕을 만들고 빈 사과 궤짝을 부수어 불을 지폈다. 화덕구이 호떡이었다. 어쩌다 이걸 하나 사먹으려면 길게 줄을 서야 했다. 가게에선 연탄아궁이를 내놓고 호빵과 국빵을 쪘다. 국빵이란 일종의 중국식 만두로 속이 들어 있지 않았다. 대신 같이 주는 걸쭉한 수프에 만두를 찍어 먹었다. 인기가 없어서 금세 출시가 중단되었다.

 

 

요즘은 푸성귀며 고기며 겨울에도 언제든 먹을거리를 풍성하게 볼 수 있지만, 그때는 시장도 썰렁했다. 배추나 무, 겨울 시금치나 있었을라나. 기억이 없다. 일찍 삭은 김장김치로 김치죽(갱시기)을 끓여서 먹는 게 채소의 전부였다. 봄동이 나오기 전까지는. 없는 재료를 가지고 어머니는 늘 솜씨를 발휘했다. 볼이 꽝꽝 얼어서 하교하면 어머니가 부엌에서 동태와 물오징어를 손질하고 계시곤 했다. 무를 썰어 넣은 두 가지 요리가 준비되는 것이었다. 동태찌개는 머리째 넣고, 무를 넉넉히 깔았다. 동태살에서 진한 국물이 나와서 맛있는 냄새가 퍼질 즈음 고춧가루를 풀면 화사하고 매운 향이 집 안에 가득했다. 동태 알과 내장이 들어 있으면 금상첨화. 식구가 많아서 건더기보다 국물이 많았다. 별달리 맛을 낼 재료가 있었겠는가. 아마도 미원이나 조금 넣고 끓이시지 않았을까. 나는 아버지가 뜨거운 국을 ‘시원하다’고 하는 이유를 이미 어렸을 때 알았다. 동태 머리를 쪽쪽 빨았고, 내장을 감싸고 있던 거무스름한 뱃가죽이 더 달다는 것도 알았다. 궁하면 아이들이 일찍 어른이 된다.

 

우리집은 회를 먹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요리한 것이 물오징어회였다. 겨울이니까 오징어의 선도가 좋았고, 어머니는 마음놓고 살점을 발랐다. 오징어를 툭툭 썰고 시원한 겨울 무를 저민다. 고춧가루 식초에다 설탕 넣고 버무리는 무침회였다.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오징어의 속살. 산 오징어도 먹을 수 있는 요즘이지만, 어머니의 겨울 물오징어 맛만큼은 못한 것 같다. 살집 두툼하고 씹는 맛이 좋던 그때 오징어는 아주 위풍당당한 어물이었다. 우리 식탁에 동태가 없는 것도 아니고 오징어도 올라온다. 듣자니 두 어물을 잡는 우리 어민의 노고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베링해 차가운 바다에서 목숨 걸고 명태를 낚으며, 오징어를 걸기 위해 거친 파도가 이는 먼바다까지 나가고 있다. 게다가 중국 배들과 치열한 사투를 벌이면서 겨우 어창을 채워 들어온다고 한다. 삭풍이 불면 생각나는 저 어물들의 뒷사정이 이제 가슴을 저미고,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음식이 간절해진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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