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대통령의 혼밥

일본에 가서 우리가 놀라는 장면 중의 하나는 이른바 ‘혼밥족’이다. 거리의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이들이 흔하다. 아예 독서실 칸막이처럼 혼자 먹어도 부담 없게 준비를 해놓는 경우가 많다. 술집도 혼자서 마시는 게 유행(?)이다. 이런 이들이 서로 말을 트고 가볍게 친구를 맺는 ‘서서 마시는 집’도 있다. 개인용은 없고, 공동 탁자에서 마시면서 안주와 술을 나누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점심은 몰라도 저녁에는 혼자 식당에 가면 환영받기 힘들다. 혼자 오는 손님은 음식도 조금 시키겠지만 술을 마시지 않는 경우가 많아 매출이 안되기 때문이다. 고깃집은 이런 현상이 심하다. 숯불을 피우자면 고기를 어지간히 먹어줘야 이른바 ‘불값’이 나오는데, 혼밥, 혼술족을 좋아할 리 없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홍대 앞에 혼자서도 고기를 구울 수 있는 집이 있다. 아예 ‘혼술 환영’이라고 써 있다. 그저 영업 전략이거니 하기에는 구석에 몰린 젊은이들의 슬픈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아 입이 쓰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혼밥이 흔했다. 임금부터 혼자 밥을 먹었다. 왕비조차 겸상을 하지 않았다. 어른들이 하는 말 중에 이런 게 있다. “할아버지가 손자와 겸상해도 아들과는 하지 않는다”, “아무개와 겸상을 해서 특별하게 느꼈다”는 말 같은 것이다. 겸상은 봉건시대 가부장의 권위를 상징했다. 성장한 아들과는 겸상하지 않는다는 거, 또 어떤 이와 친히 겸상을 해서 다정한 마음이나 특별한 관계를 표현했다는 거다.

 

유럽의 봉건시대에도 그랬다. 왕은 밥 먹는 것으로 통치행위를 연장했다. 혼자 몇 시간에 걸친 만찬을 하면서 신하들과 불러올린 영주들이 그 장면을 구경하게 했다. 귀한 음식을 혼자 먹음으로써 범접할 수 없는 권위를 표현했던 것이다. ‘혼밥’은 아니지만, 군대에 가면 높은 지휘관은 따로 밥을 먹는다. 문제는 그 식탁이 두어 뼘쯤 높게 설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똑같은 메뉴를 먹는데도 그렇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을 확인하는 데 청문회의 역량이 총동원되고 있다. 그 와중에 전직 전담요리사의 증언이 회자되고 있다. 세월호 침몰 당일 대통령 관저에 점심과 저녁을 각 ‘1인분’씩 넣었다는 것이다. 일국의 대통령이라고 해서 밥을 혼자 먹지 말란 법은 없다. 더구나 배우자도 없으니 혼밥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주어진 5년의 시간은 철저하게 국민과 국가에서 받은 것이다. 밥 먹는 시간도 ‘헌법에 의한 권력 위임’의 연장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바라는 대통령이라면, 그 시간을 아껴 소임에 보태는 게 당연한 일이다. 미국 얘기를 해서 안됐지만, 9·11 같은 국가 비상사태에 그들의 대통령은 상황실에서 서서 햄버거와 피자로 끼니를 때우면서 지휘를 했다고 한다. 배가 침몰하고 아이들의 운명이 결정되던 그 긴 시간 동안 대통령의 두 끼의 식사가 ‘1인분’이었다. 대통령이 상황실에 나와서 수많은 참모들을 지휘하면서 컵라면을 먹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아, 왜 우리는 그런 대통령을 갖는 행운이 없었을까.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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