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칼럼

[여적]문화재 된 막걸리

‘막걸리 빚기 문화’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됐다. 국립민속박물관·문화재청 제공

쌀을 깨끗이 씻어 불린 뒤 고들고들 고두밥을 찌고 널찍이 펴서 식힌다. 그 밥에 누룩물을 버무려 항아리에 담아 아침저녁으로 며칠 젓고 봉해두면 어느새 뽀그락뽀그락 술 익는 소리가 난다. 밥알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막걸리 완성. 고운 면보로 걸러내고 마시면 된다. 집에서 간편하게 막걸리 빚는 법을 알려주는 이런 영상들이 유튜브에 무척 많다. 막걸리 직접 만들기가 요즘 젊은 세대의 트렌드로 이미 자리 잡았다. 코로나19 사태로 집에서 술을 마시는 ‘홈술’이 늘어난 데다 옛것을 새롭게 즐기는 그들의 ‘뉴트로’ 감성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막걸리는 더 이상 ‘아재’들의 술이 아니다. 유행에 밝고 개성 넘치는 2030세대의 ‘힙’한 문화다.

 

막걸리는 오래된 것 중에서도 오래된 우리 것이다. 농경시대부터 지금까지 내려온 대중의 술로 서민의 삶과 함께했다. 막걸리의 친구라 하면 빈대떡이나 두부·김치 같은 안주가 떠오른다. 그런데 그 말고도 친구가 참 많다. 고된 농사일, 공장일을 마치고 벌컥벌컥 들이켜는 막걸리는 노동의 친구다. 대폿집에서 한잔 걸치고 가슴속 애환을 한 가락 뽑아내는 노래 또한 막걸리의 친구라 하겠다. 그래도 무엇보다 중한 친구는 사람이다. 막걸리는 늘 사람들 곁을 지키며 인생만사와 희로애락을 나눴다. 가수 양희은의 노래 ‘막걸리’는 “부어라 마셔라 즐거워라/ 오가는 술잔 오가는 마음/ 그래서 막걸리가 좋더라”고 한다.

 

막걸리는 추억이다. 아이들이 “술 받아 오라”는 어른들의 심부름에 커다란 양은 주전자를 낑낑대며 들고 다녔던 그 옛날, 쌀이 귀해 쌀막걸리가 금지되자 집집마다 밀주를 빚었던 그 시절의 풍경이 모두 역사로 넘어갔다. 막걸리 얻어먹고 표를 찍어줬다던 ‘막걸리 투표’는 부정선거를 지칭하는 말로 남아 있다.

 

시민들이 문화재 지정을 제안한 ‘막걸리 빚기 문화’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다고 한다. 막걸리 빚는 과정뿐 아니라 그와 연관된 생활관습까지 포함된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었어도 변치 않은 막걸리 생활문화가 문화재로 귀하게 여겨진다니 반갑다. 막걸리가 사람들의 화를 풀어주고 다툼을 말리며 정겨운 대화를 나누게 하는 소통의 아이콘으로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오피니언 여적 - 경향신문

 

news.kh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