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예술가와 전쟁

 
파블로 마코프, The Fountain of Exhaustion, 1995. ⓒ파블로 마코프

 

평화, 민주주의는 생각보다 허약한 것 같다. 너무 쉽게 무너지고, 회복은 어렵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지구 한쪽에서 평화는 무너져 내렸고, 폭격 아래 희생자가 속출한다. 누구의 목적과 욕망을 위하여 평화는 깨어지는가. 평화를 망가뜨릴 수 있는 당위성을 가질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제59회 베니스비엔날레 우크라이나 파빌리온 참여 작가 파블로 마코프는 작업을 중단했다. 전투기가 오가고 총알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작품을 마무리짓고 베니스로 작품을 보낸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하르키우에서 가족과 은신하고 있는 작가는 우리가 믿어온 자유, 평화,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 탄식한다. 예술계는 파블로 마코프와 우크라이나 예술가들에게 연대의 목소리를 보태고 있다. 마코프는 많은 이들로부터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러시아 국가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비윤리적인 공격이 자행되는 상황에서, 모든 민족이 동등하게 만나야 하는 베니스비엔날레의 장에서 이들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푸틴 정부의 지원을 받는 베니스비엔날레 러시아 국가관의 큐레이터 라이문다스 말라사우스카스와 작가 알렉산드라 수하레바, 키릴 사브첸코프는 러시아 정부를 비판하며 올해 베니스에서의 러시아관을 폐관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제국주의적 야망을 가진 호전적 침략자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것은 비단 하나의 국가를 파괴할 뿐 아니라, 유럽 문명 전체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말라사우스카스는 “민간인이 로켓포 사격을 피해 숨거나, 우크라이나 시민이 대피소에 숨거나, 러시아에서 항의하는 사람들이 침묵할 때 예술은 있을 곳이 없다”고 항변했다. 예술은 삶의 일부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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