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우리가 자명한 진리라고 믿는 것들

마타나 로버츠, 우리는 이 진리를 믿는다, 2021 ⓒMatana Roberts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자명한 진리라고 믿는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조물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하였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권, 자유권, 그리고 행복 추구권이 있다.” 대영제국과 아메리카 식민지 간 전쟁이 멈추지 않던 시기, 대영제국으로부터 온전히 독립하고자 하는 의지를 피력한 미국의 독립 선언문은 민주주의와 자유, 독립정책에 대한 이들의 열망을 엄숙하게 담고 있다. 작가 마타나 로버츠는 2020년 미국인들이 겪었던 사건을 영상과 사운드 설치로 담은 작품의 제목으로 선언문 가운데 한 문장인 ‘우리는 이 진리를 믿는다’를 선택했다.

그는 독립선언문의 정신 아래, 조 바이든과 도널드 트럼프 사이 한 사람을 선택해야 했던 대통령 선거, 백인 경찰관의 강압체포로 흑인 남성이 사망하면서 격화된 ‘블랙 라이브스 매터’, 기존의 시스템을 뒤흔든 코로나19 팬데믹,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국 국회의사당 습격 등, 오랜 세월 공동체가 공들여 구축해온 가치와 삶의 방식을 위협한 갈등과 극복의 현장을 배치했다.

작가가 촬영했거나, 인터넷에서 발견한 미국의 항의 시위 장면을 엮어 제작한 영상과 어우러져, 미국의 50개 주를 의미하는 50개의 스피커에서 50개의 서로 다른 입장을 연상시키는 개별 음향이 흘러나오면, 전시장은 불편한 소리로 채워진다. 국가가 시민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가치관과 철학, 입장들을 조율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과정, 결국 하나의 정책을 선택하여 실행하는 과정의 지난함은 소음처럼 갈라진다. 국가의 통제력은 종종 무력화되거나 폭력적으로 발현되고, 정보는 조작되어 사람들의 판단력을 마비시킨다. 세대 간, 성별 간, 계층 간, 인종 간 극복할 수 없는 트라우마가 연출하는 불협화음 안에 우리는 서 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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