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국가라는 정의

 
에릭 보들레르, 막스에게 보내는 편지, 2014, 1시간 43분 ⓒ Eric Baudelaire

 

“국가로 인정되지 않는 나라의 외교관은 아침에 출근해서 무슨 일을 하는가. 영토, 정부, 국기, 언어가 있지만,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국가 압하지야. 다른 어느 국가도 이곳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압하지야는 경계에 걸쳐 있는 공간, 리얼리티의 틈새에 갇힌 채 존재하지 않으면서 존재한다.”

압하지야 공화국의 외무 장관 ‘막스 그빈지아’에게 편지를 보낸 작가 에릭 보들레르는, 딱히 그로부터 답장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수취인불명으로 자신에게 돌아올 가능성이 높은 편지를 적으면서, 국가의 정의를 고민했을 뿐이다. 뜻밖에 답신을 받은 보들레르는 막스와 서신을 교환했고, 이 내용을 바탕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80년대 후반 소련에서 민족주의 운동이 전개되던 당시, 조지아 공화국은 소련으로부터 독립했다. 한때 독립국이었으나, 이 당시는 조지아 자치주였던 압하지야의 민족주의자들도 이를 계기로 조지아로부터 분리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조지아는 그들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고, 비무장상태인 압하지야에 침공하여 약탈, 폭행, 살인을 자행한다. 당연한 수순인 양, 압하지야인들은 조지아인을 향한 인종청소에 가까운 테러를 시작했다. 서방과 연계된 조지아를 압박하기 위해 러시아는 압하지야를 후원하고, 마침내 압하지야는 조지아로부터 독립했지만, 러시아의 군사력을 배경으로 독립한 탓에 서방진영은 압하지야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두 ‘국가’ 간의 상처와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에 대해서도 입장이 다른 조지아와 압하지야는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며 긴장을 증폭시키는 중이다. 국가의 정의와 존재이유를 상기시키는 보들레르의 작품을 떠올리며 민족의 이름으로, 국가의 이름으로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돌이켜본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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