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완벽한 최후의 1초는 단 하나의 정답을 꿈꾸지 않는다

 
계수정, 굿나잇 미스터 백: 90번의 액션, 2021

 

한 예술가의 삶이, 동시대 예술가들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창작을 자극하는 ‘원전’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시대를 초월해 재정의되는 창작자의 존재는, 동시대 예술가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과 창작방법론이 구현하는 장면의 의미를 다른 시공간의 시선을 빌려와 환기시켜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한다.

올해로 탄생 90주년을 맞이하는 백남준을 기념하며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준비한 특별전 ‘완벽한 최후의 1초 - 교향곡 2번’은 ‘백남준’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가 교감하여 또 다른 의미와 감각을 만드는 장면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백남준이 1961년 작곡한 텍스트 악보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을 국내 최초로 시연하는 이 전시는 지시문으로 채워진 사각형 모양의 악보를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연구하고 해석한 교향곡을 선보인다.

 

지시문 ‘장치된 피아노’로 14번 방을 구성한 피아니스트 계수정은 관객들이 직접 두 대의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관객이 청중에서 벗어나 창작자의 위치에 함께하기를 독려한 백남준의 의도를 담아, 그의 방식으로 장치한 피아노를 설치했다. 백남준의 ‘액션 뮤직’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담아 ‘굿나잇 미스터 백: 90번의 액션’을 작곡하여 연주한 그는, 1959년과 1963년에 백남준이 했던 것처럼 사물을 이용하여 피아노의 음색을 변형하고 해체했다. 피아노에는 그가 설치한 폐타이어 고무, 못, 전화기, 비디오 플레이어, 돌 등이 있다. 전시기간 관객은 이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전시장을 채우는 교향곡의 한 장에 참여할 수 있다. 그 무엇도 고정되지 않고 흐르는 창작의 시간은 세상에 없는 음악을 창조하고자 피아노를 부수었던 청년 백남준의 열정에 접속할 수 있도록 돕는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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