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그대로 조용히

 
레이븐 차콘, 고요한 콰이어, 휘트니미술관 빌보드 설치 장면 (c)Raven Chacon

 

전시는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동시대 삶을 향한 질문과 고민에 접속하기 마련이다. 휘트니비엔날레의 2022년도 전시를 기획한 아드리안 에드워드와 데이비드 브레슬린은,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 시대를 이해하는 데 예술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살펴보는 방법론을 제공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들은 전염병의 창궐과 폭발적인 정치 사회적 갈등이 수면으로 끌어올린 위기의 순간들을 관통하면서 이번 전시의 제목으로, 토니 모리슨의 소설 <가장 푸른 눈>의 첫 문구‘그대로 조용히’를 선택했다. 토니 모리슨이 1970년 발표한 이 소설은 11세 흑인 소녀의 비극을 통해 인종차별과 지배문화의 폭력이 만연하는 사회의 면면을 드러낸다.

사회적 부조리를 맞닥뜨린 이들은, 종종 다양한 이유로 그 사안에 침묵한다. 문화적 규범 안에 안주하면서, 입 밖으로 꺼내기 불편한 말을 지우기로 합의하기도 한다. 침묵으로 외면하고 동조하는 공동체가 사회적 트라우마를 감추고 폄훼하고 축소하는 사이, 공동체의 윤리와 개인의 정체성은 흔들린다. 이와 같은 회피의 상황을 은유하는 ‘그대로 조용히’는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게 만든다.

나바호족 인디언 아티스트인 레이븐 차콘은 본 전시에 ‘고요한 콰이어’를 선보였다. 그의 작업에서 ‘침묵’은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적극적 발화의 방법으로 등장한다. 다코타의 송유관 건설 공사 현장인 스탠딩록 원주민 보호구역의 원주민들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성지와 식수원을 오염시킬 것이 분명한 공사 현장 앞에서 ‘그대로 조용히’ 있지 않고 적극적인 침묵으로 저항했다. 차콘은 원주민들과 경찰의 고요한 대치상황이 강력한 목소리를 만드는 현장을 관객에게 제시하며 ‘그대로 조용히’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전한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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