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사과

 
제임스 T 홍, 사과, 2016

 

사과의 전제조건은, 자기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외부적 상황 때문에 자신의 잘못에 대한 반성 없이 사과의 제스처를 취한다면, 그런 사과로는 용서를 받을 수 없다. 사과보다 해명이 앞서는 경우 역시, 용서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과오를 저지른 자의 자기변명에 급급한 모습을 지켜봐야 할 이유가 있는 자들은 없건만, 우리는 왜곡된 목적 때문에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사과를 받아야만 하는 일상을 살고 있다.

제임스 홍은 소위 말하는 사회지도층이 사과하는 맥락과 방법, 그들의 언어를 관찰했다. 정치적인 사과, 반성하지 않고 태연히 반복하는 잘못, 그 잘못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사과하는 일련의 과정을 정치 사회적 흐름과 연결하여 구성한 영상 작품 ‘사과’를 발표했다. 그 안에서 작가는 특히,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사과의 임무, 화해와 용서의 서곡으로서 상징성을 가져야 하는 사과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의 작업은 독일의 전 총리 빌리 브란트의 사과로 시작한다. 1970년 12월7일 바르샤바를 방문한 그는 유대인 게토의 희생자 기념비에 헌화한 후,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참회의 묵념을 올린다. 그의 행동은 전 세계 대중에게 세계대전 후 독일이 진정으로 반성하고 있다는 인상을 남겨주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1942년 미 정부가 행정명령을 근거로 일본계 미국인을 강제 수용했던 일을 사과했다. 호주의 전 총리 케빈 러드는 호주 정부의 원주민 탄압 역사에 대해 사과했다. ‘사과’에 대한 그의 작업은 2016년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과 필리핀의 마약중독자 문제를 연결하여 비유한 발언을 사과하는 내용으로 마무리된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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