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미래

[음식의 미래]누가 요리 프로그램을 바꾸나

이탈리아 음식에 빠져 이탈리아로 요리유학까지 다녀왔지만 내가 욕심이 나는 음식은 단연 한식이다. ‘비 내리면 파전’ ‘라면에는 파김치’를 되뇌는 나의 아재 입맛이 내가 한식을 갈망하는 이유다. 그러나 내 한식 실력은 역부족이다.

 

나의 한식 갈증을 채워주는 것 중 하나가 EBS <최고의 요리비결>이다. 이 프로그램은 ‘요리계의 전국노래자랑’으로 불릴 만큼 장수 프로그램이다. 나는 이 방송에서 ‘고춧잎나물’ ‘술빵’같이 KBS <한국인의 밥상>에 나올 법한 한식 메뉴를 눈여겨보고 따라 만든다. 그런데 얼마 전 이 프로그램 몰아보기를 하다 깜짝 놀랐다. 형식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첫째, 요리 전문가는 일상복을 입고 있는 반면, 아이돌 출신 진행자는 조리복을 입고 있었다. 대부분 요리 프로그램과 정반대다. 둘째, 요리를 요리사와 진행자가 반반씩 한다. 물론 숙련도가 필요한 메뉴는 전문가가 모두 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시식이 없어졌다. 축구 중계로 비유하면 선수 간 패스만 보여주고 골 장면은 안 보여주는 셈이다.

 

지난 6월부터 방영된 MBC <백파더: 요리를 멈추지 마>와 케이블 채널 올리브 <집쿡라이브>도 비슷하다. 두 프로그램은 요리사가 참여 신청한 시청자를 대상으로 온라인 요리 강습을 한다. 그래서 “냉동 채소도 괜찮나요” “이렇게 썰어도 되나요” 같은 초보용 질문이 쏟아진다. 스타 셰프가 기예를 펼쳐 산해진미를 만들면, 초대된 연예인이 폭풍 흡입을 하던 기존 예능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다.

 

요리 프로그램의 변신은 코로나19 탓이다. 그 전까지 맛있는 음식은 언제 어디서든 먹을 수 있었다. TV 화면을 가득 채운 스타 셰프의 멋진 요리는 그런 욕망의 총화였다. 하지만 코로나로 그 욕망은 정지됐다. 그래서 SNS와 유튜브에는 홈쿡, 홈카페, 홈파티 관련 게시물이 끝없이 올라온다.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지난 5월 코로나19로 이동제한(록다운)이 실시됐을 때 음식 레시피 관련 트래픽이 사상 최대였다. 이동제한이 풀렸지만 재택근무가 보편화돼 홈쿡은 ‘홈트(홈 트레이닝의 준말)’와 함께 여전히 대세다.

 

 

이런 상황에서 SNS와 유튜브가 요리강사 역할을 하고 있다. 두 매체는 기존 요리학원에 견줘 비용이 적게 드는 데다 언제든 접근할 수 있으며 소비자가 원하는 레시피만 콕 집어서 무한반복할 수 있다. 앞에서 설명했던 요리 프로그램들은 이 트렌드를 방송에 접목한 것이다.

 

그렇지만 코로나 이전에도 음식의 디지털화는 상당 부분 진행돼왔다. 배달앱에서 유명 맛집 요리를 배달해주고, 식품기업들이 스타 셰프 레시피로 만든 간편식을 앞다퉈 선보인 지 오래다. 코로나 전인 2018년 이미 인스타그램에서 ‘카페’라는 해시태그는 7.9% 줄었지만 ‘홈카페’는 14.3% 증가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BC카드 빅데이터센터). 코로나로 음식에 대한 경험의 디지털화는 더 빨라질 걸로 전망된다. 코로나 이후, 내가 요리 프로그램을 보며 깜짝 놀란 것보다 우리 식탁은 훨씬 더 많이 바뀔 수도 있다.

‘술빵’에 ‘고춧잎무침’을 찾는 아재 입맛의 나는 이 속도에 적잖이 현기증을 느낀다. 그래도 나는 리모컨과 마우스를 꽉 잡고 이 속도를 즐겨볼 요량이다.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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