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미래

미국 대선과 김장

나는 김치 없으면 밥을 못 먹는 김치 마니아다. 김치의 아삭아삭함과 그 풍성한 감칠맛은 다른 나라 어떤 샐러드도 흉내 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국수주의자이기도 하다.

 

갓김치를 특히 좋아한다. 갓 특유의 알싸함과 젓갈 향기 진한 양념의 조화는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다. 갓김치는 늦은 밤 라면과 함께 먹는 것이 가장 맛있지만 볶거나 찌개로 먹어도 각별하다. 갓 중에서도 여수 돌산갓이 맛있다. 따뜻한 해풍을 받고 자란 여수의 갓은 열무처럼 사각사각 씹히는 데다 색깔도 다른 갓보다 싱그럽다.

 

올해 긴 장마와 잦은 태풍에도 불구하고 돌산갓의 가격은 작년에 견줘 크게 오르진 않았다. 그러나 고춧가루·마늘 등 다른 재료들의 가격이 올라 김장이 걱정이다. 그나마 갓은 배추보다는 나은 편이다. 최근 고랭지 배추가 출하되면서 떨어지기는 했지만 한때 배추 한 포기가 1만원을 훌쩍 넘기도 했다.

 

식탁 걱정은 전 지구적 이슈다. 세계 각국이 매년 더 극성스러워지는 날씨 탓에 상시적인 식량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올해는 코로나19까지 겹쳐 더 우려스럽다.

 

기후변화는 온실가스 탓이 크다. 기상학자들은 산업혁명 이후 지구 평균 기온이 1도 상승했으며 앞으로 0.5도가 더 오르면 지구의 자연적 회복력이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인류가 손을 써볼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10년쯤이다.

 

코앞으로 다가온 미 대선이 중요한 이유이다. 미국은 세계 2위의 온실가스 배출국(1위는 중국)이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195개국의 온실가스 감축을 의무화한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탈퇴했다. 그는 “지구온난화는 미 제조업의 경쟁력을 앗아가려고 중국인들이 만든 가짜뉴스”라고 말해 왔다. 이와 달리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는 당선되면 바로 이 협약에 재가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때문에 기후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되면 인류는 지구온난화를 막을 기회를 잃어버린다”고 말한다.

 

물론 미 대통령이 바뀐다고 내년부터 한반도에 폭염이 없고 장마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탕자’인 인류가 ‘어머니’ 지구를 위해 드디어 뭔가를 시작한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다. 반면 트럼프가 재선되면, 나는 김장철만 되면 갓값·배추값 걱정은 물론이고 해마다 뜨거워지는 바닷바람 탓에 갓 자체를 아예 재배하지 못할까 노심초사할 것이 분명하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인류가 다른 은하계로 떠나야 하는 절박함의 출발점을 식량난으로 설정했다. 영화에서 지구온난화에 따른 먼지 폭풍으로 밀은 이미 멸종됐고 옥수수 정도만 키울 수 있다. 그마저도 어렵게 되자 인류는 이름도 생소한 웜홀을 타고 우주로 떠난다. 영화 첫 대사는 “아빠는 농부였어요, 처음에는 아니었지만. 그때는 다 농부였어요”이다. 식량이 없으면 꿈도 미래도 없다는 메시지다.

 

누구는 남북관계 관점으로, 누구는 경제 관점으로, 누구는 해수면 높이의 관점으로 미 대선을 지켜본다. 김치를 무척 사랑하는 나는 배추와 갓의 관점으로 미 대선을 지켜보고 있다.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