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이북식 만두, 북한 만두

옛글에 명절에는 만두를 빚는다 하였는데, 어디까지나 한수 이북의 일이다. 남쪽의 만두는 중국인들의 몫이었다. 동네에 화교가 좀 살았는데, 명절에 푸짐하게 만두를 빚었다. 엄밀히 말하면 파오츠(包子)였다. 만두(만터우)는 화교들에게는 속을 채우지 않는 일상의 밀가루 음식이었다. 발효시켜 부풀린 후 쪄서 밥으로들 먹었다. 그걸 얻어먹어본 적도 있다. 짭짤한 나물과 채소 볶은 것을 그 밀가루 만두, 실은 빵이라고 할 음식에 얹어 먹었다. 소 없는 만두란 참 심심했지만, 부풀린 반죽이 씹히는 결이 인상 깊었다. 그 만두를 잊지 못해서 대림동 상가에 종종 가기도 했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진짜 ‘만두’를 판다. 거대하게 부풀려서 왕만두라고 해야 할 밀가루 빵을 팔고 있는 것이다. 민족이 정주지는 바꾸어도 음식은 쉬이 바꾸지 않는다.

 

 

내가 집에서 만두를 먹게 된 것은 호기심 많은 어머니 덕이었다. 집에서 만두를 빚지 않는 남쪽 고향 출신의 어머니는 서울에서 이북식 만두를 배웠다. 어른 손바닥만 한 만두를 빚었다. 세 개만 먹어도 어른이 배부를 크기였다. 비계 섞인 돼지고기를 넉넉히 넣고 부추를 엄청나게 많이 넣는 것이 바로 이북식이라고 했다. 두부는 거의 쓰지 않았고, 겨울엔 김치로 만들었다. 역시 부추를 넣은 여름식 만두가 맛있었다. 소가 아무리 좋은들 만두피가 더 중요한 몫이란 걸 만두를 직접 빚으면서 알았다. 반찬이 좋은들 밥이 나쁘면 별무소용인 것처럼.

 

미련한 짓이었지만, 학창 시절에 많이 먹기 겨루기의 대상은 만두였다. 스테인리스나 양은 찜통에 9개씩 담긴 찐만두를 몇 개나 먹나 다퉜다. 하필 찐만두가 선택된 것은 아마도 차곡차곡 높이 쌓이는 찜통이 보기에도 그럴싸했을 것이고, 만두의 개수로 자랑 삼기 쉬웠기 때문일 것 같다. 찜통이 탁자 위로 끝없이 솟았다고 허풍을 쳤으며, 찐만두를 모두 세어보니 100개를 먹었네, 200개를 먹었네 했다.

 

마침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다. 그쪽의 만두 사정은 어떨지 궁금하기만 하다. 황해도는 만두를 예쁘게 빚고 평안도로 가면 커지고 투박하다고 했다. 신의주까지 북상하면 왕만두가 있다고 했다. 중국 국경으로 갈수록 만두가 커지고 터프해졌다고 한다. 먹어볼 수 없으니 이 또한 막막한 일이다. 전에, 단둥까지 가서 거리 만둣집에서 요기했다. 엄청나게 큰 만두를 두 개 담아 1인분으로 팔았다. 기름이 줄줄 흐르는 맛있는 만두였다. 그 가게에서 이북으로 건너가는 압록강 철교는 보이지 않았지만, 북한 만두도 비슷하겠거니 하고 먹었다. 언젠가 강헌 선생이 얘기한, 황해도 만두의 전설도 보고 싶다.

 

겨울이면 돼지를 잡고, 만두를 빚은 후 무명실에 꿰어 차가운 바람이 들이치는 처마에 매달아 얼렸다는 전설의 만두를. 대통령이 가고, 문화예술인이 가니 우리 또한 갈 기회가 없겠는가. 대동강가에서 철갑상어 요리도, 숭어국도 좋지만 나는 만두가 먹고 싶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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