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커피 르네상스

커피의 르네상스다. 커피에 ‘부흥’이라니. 본디 흥했던 시절이 있었나. 그렇다. 맥스웰이 상징하는 가루 커피의 시대가 그 원형이 아닐까 한다.

어렸을 때(그러니까 1970년대 초·중반), 손님 대접이란 커피가 아니면 곤란했다. 금속 뚜껑을 열고, 그 당시 유행하던 꽃무늬 사기잔에 커피를 탔다. 인기 좋던 백설탕도 듬뿍 넣었다. 차 문화는 대중적이지 않았으므로, 커피는 최초의 음료 대접 문화의 시작이었다. ‘식사하셨느냐’고 묻고, 밥상을 차려내는 게 오랜 우리 민족의 생활이었으니 말이다. 어머니는 그 커피를 아주 고이 모셔두었다. 비싸고 귀했다. 미제 방물장수에게서 사는 제품이었다. 미국산은 지고한 선이었고, 최고를 의미했다. 미군부대에서 브로커들이 빼돌리는 첫 번째 물품이기도 했다. 남대문 도깨비시장에 가면 병에 담긴 커피가 주인공이었다. ‘프림’이라고 부르는 식물성 크림의 탄생은 그 이후의 일이다. 디저트 문화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던 우리 식습관에 커피는 최초의 디저트였다. 설탕을 듬뿍 치고, 크림을 쳐서 마셨다. 자판기의 등장은 커피 문화의 어떤 또렷한 상징이었다. 고도성장의 낙수, 입가심의 종속성 그런 것이라고 후대의 사회학자들은 발언했다.

다시 커피의 전성시대다. 치열한 ‘전쟁’이라고 한다. 스타벅스가 불러온 ‘이탈리아식 미국 커피 문화’는 빠르게 이 땅에 이식됐다. 커피값에 대한 비난이 이어졌다. 신문에서는 꼭 외국의 예를 들어 커피값에 거품이 끼었다고 공격했다. 이탈리아나 프랑스 같은 유럽에서 커피는 한 잔에 2000원을 넘지 않는다. 1인당 커피 소비량이 더 많은 유럽과 우리를 비교하는 건 사실 무리다. 그래도 커피값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이것저것 양념을 치는 건 5000원을 훌쩍 넘는다. 역시 시장은 가격을 움직인다. 더 싸게 커피를 파는 브랜드가 속출했다. 최근에는 집밥 바람을 불고 온 백종원씨의 회사 브랜드를 단 가게가 빠르게 번져가고 있다. 1000원짜리 커피를 표방하는 패스트푸드점과 프랜차이즈 빵집까지 저가 커피 공세에 가담했다. 언론에서는 기존 브랜드의 ‘긴장’과 춘추전국시대라고 표현하지만, 소비자는 더 넓어진 선택권을 반가워한다.





커피는 이제 일정 집단이나 부류의 기호품이 아니라 필수품에 든다. 더 싸져야 맞다. 이제 유럽과 비슷한 가격이라고 한다. 1500원짜리가 등장했으니, 유럽의 ‘1유로짜리 기본 커피’와 같아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속내는 다르다. 유럽은 커피 제품을 공유할 뿐, 커피를 파는 바나 카페는 대개 개인 소유다. 프랜차이즈에 의해서 ‘뜯기는’ 것이 없다. 자영업자의 주머니로 수익이 들어간다. 그 돈은 잘 순환된다. 그러나 우리 기업은 본질적으로 돈을 쌓아두려고 한다. 재벌들 창고에 700조원이 축적되어 있다는 얘기를 꺼낼 필요도 없으리라. 더 싸진 커피의 배경에는 월급쟁이의 몰락, 자영업의 무한 경쟁 같은 끔찍한 코드가 숨어 있다. 커피가 쓴 것은 달리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박찬일 | 음식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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