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목포의 정성

툭 하면 무슨 몇 대 요리니 하는 말이 시중에 유행이다. 방송과 인터넷에서 퍼뜨리는 모양이다. 수우미양가 뽑듯, 장원 차석 서열을 정해 딱 부러지게 순서를 정해버려야 제목이 그럴듯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좀 모자란 식견으로 뽑아놓은 몇 대 요리가 고착화된다. 평양냉면도 그렇고 짬뽕도 그렇다. 기실 가보면 그런 주장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지 기가 막힐 때도 많다. 뭐 재미로 그런다 치기에는 허망한 결말이 많다.

그 ‘몇 대’에 들지 못했으나 어디선가 맛있고 제대로 하는 집들이 들으면 얼마나 속이 상하겠는가. 지방도시나 외곽지역에 그런 집들이 왕왕 있다. 목포에도 그런 집들이 있다. 워낙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보니, 소위 블로거들의 발길도 거의 없고 홍보도 잘 안된다. 오히려 그 덕에 좋은 요리가 더 남아 있는 경우를 많이 본다.

목포의 중국집이 그렇다. 목포는 하당과 남악이라는 신도심 겸 상업지구가 연달아 개발되면서 원도심이랄까, 오래된 시내가 힘겹다. 유명한 프랜차이즈 커피숍(2층으로 되어 있고 자리가 100개는 넘어보이는)에서 4시간을 보냈는데, 나 말고 손님이 딱 세 명 더 있었다. 안 그래도 지방의 공동화가 심해지는데, 가까운 곳에 신도심을 만들어버리니 옛 도심은 죽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 자그마한 도심에 중국집이 서넛 있다.





모두 세월이 제법 된 집들이다. 오는 손님들이 늘 빤하니, 이른바 ‘면식 손님’이자 단골들이라 요리에 들이는 정성이 보통 아니다. 한 집은 ‘중깐’이라는 이름의 전설적인 중화요릿집이다. 중깐이란 새참이라는 뜻이라는데, 어떤 이는 ‘중화루 간짜장면’의 준말이라고 한다. 그 이름만큼이나 간짜장면의 맛이 뛰어나다. 일부러 멀리서 찾아가서 사먹을 만한 맛이다. 면은 가늘고 개량제가 적게 들어 위에 부담이 적다. 간짜장은 ‘간’이 딱 맞고 입에 붙는다. 재료를 잘게 다지는, 일종의 유니짜장면이인데, 전설이 되어버린 계란프라이가 얹어져 나온다. 5000원짜리 면 요리 하나에 프라이를 하나씩 얹자면 이게 보통 정성이겠는가. 이 집은 무려 1950년 창업한 노포이기도 하다. 가까운 곳에 태동식당이라는 곳은 짬뽕이 좋다. 옛날식으로, 돼지고기를 가늘게 썰어 볶고 해산물을 더했다. 국물은 시원하고 면발도 하늘하늘하게 입에 붙는다. 배달해도 붇지 말라고 고무줄처럼 만든 면이 아니다. 게다가 김치를 주는데, 집에서 담근 놈이다. 중국집에서 제대로 된 김치를 얻어먹다니, 과연 목포답다는 생각에 그저 기뻤다.

최근에 중화요리가 몇몇 유명 요리사의 명성에 힘입어 부흥 조짐이 있다고 한다. 그렇게 되자면, 한 그릇의 면 요리에도 남다른 기술과 정성을 붓는 일이 먼저 있어야 한다. 고단한 지난 세월에 간편한 배달 음식의 대명사가 되어 망가진 중화요리의 전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모르겠다. 목포의 경우에서 가능성을 보았다.



박찬일 |음식 칼럼니스트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포장마차  (0) 2015.11.12
돼지 내장을 먹는 법  (0) 2015.11.04
커피 르네상스  (0) 2015.10.22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홍어와 목포  (0) 2015.10.15
미국 식량 원조’의 추억  (0) 2015.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