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포장마차

술집에서 완전 금연이 된 이후 애연가들의 묘책(?)이 생겼다. 하나는 편의점이다. 가게 밖에 놓인 파라솔에서 맥주 한 캔에 한 대 피워 무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술과 담배란 찰떡궁합이다. 법이 바뀌어 피우고 싶을 때마다 밖에 나가 옹색하게 흡연하던 애연가들에게는 묘수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날씨가 추워져서 이도 쉽지 않다. 그래서 찾아낸 게 포장마차다. 포장마차는 합법적인 가게가 아니다보니 흡연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술 마시면서 한 대 피우는 재미를 위해 일부러 포장마차를 찾는 것이다. 언젠가 종로쪽을 걷는데, 곰장어 굽는 연기와 함께 자욱한 담배연기가 풍겼다. 아직도 포장마차거리가 남아 있었다. 특이한 건, 안주 그림과 함께 중국어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는 점이다. 서울의 낭만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에게 포장마차가 꽤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한때 서울은 불법 포장마차가 번성하면서 크게 사회문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권리금이 억대를 호가하고, 조폭들까지 이권다툼에 끼어들기도 했다. 강남 영동과 서울 명동은 포장마차 흑역사의 주무대였다.





포장마차는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번성했다. 적은 밑천으로 먹고살기에 이만한 것도 드물었다. 툭하면 단속반이 들이닥쳐 리어카를 실어가고, 벌금을 매기는 통에 쉽지는 않은 일이었지만 말이다. 40대 이상 되는 시민들은 하나씩 포장마차의 추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오랜 단속에 지쳐서 하나둘 사라져 간 풍물인데, 여전히 그 정서는 남아 있다. 이른바 ‘실내포차’다. 실내와 포차는 양립할 수 없는 말이지만, 우리 곁에서 독자적인 술집 영업의 형태로 살아남았다. 값싸고 먹을 만한 안주와 심야 영업이 그 특징인데, 바로 노상 포장마차의 이미지 그대로인 것이다.

원래 포장마차는 일제강점기에 생긴 형식이다. 일본인이 대로변에 열기 시작했던 것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일본은 수도 도쿄의 전신인 에도시대에 이미 포장마차가 생겼다. 튀김과 초밥을 사먹을 수 있는 거리 식당이 크게 번성했고, 그것이 지금도 ‘야타이’라는 포장마차로 남아 있다. 가까운 일본 후쿠오카의 포장마차촌은 시내에서도 손꼽는 유명 관광지가 되었을 정도다. 시내에도 몇몇 포장마차가 심야에 영업한다. 특이한 건 우리와는 달리 허가 받은 가게다. 그러나 일본도 포장마차는 계속 유지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허가는 내주었지만, 양도나 매매가 불가능하게 법이 바뀌었다. 그러니까, 지금 영업하는 건 막지 않으나, 주인이 그만두면 끝이라는 얘기다.

포장마차의 서민적 정취는 한국이나 이웃이나 이제 장차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요즘 날씨가 추워지면서 홍합이 맛이 들었다. 푸짐한 공짜 홍합 냄비에 소주잔을 기울이고, 매캐한 곰장어 굽는 연탄화로의 정경이 어울릴 날씨다. 그러나 옛 포장마차의 정서는 그야말로 꿈같은 이야기가 되었다.



박찬일 | 음식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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