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돼지 내장을 먹는 법

일본이 일찍이 고기를 제대로 먹게 된 건 1860년 이후 메이지유신을 통해서라고 알려져 있다. 서양 문물과 함께 그들의 식생활까지 본받게 된 것이다. 빵과 고기가 새로운 음식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내장과 뼈까지 먹어내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고기는 먹어도 부산물을 처리하는 건 외국인들이었다. 특히 돼지뼈는 중국인들이 얻어다가 짬뽕을 만들고, 소·돼지 내장은 일본 침략 전쟁이 끝난 이후 재일조선인들이 구이와 전골로 만들어 먹고 팔았다.

지난 칼럼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가축 내장을 ‘호루몬’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버린 것’이라는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 지방 말이라고 한다. 간사이는 재일조선인의 최대 거주지다. 본디 조선의 요리재료였던 가축 내장은 일본에서 뒤늦게 꽃피웠다. 우리가 돼지갈비와 삼겹살, 소갈비와 불고기에 열광하는 동안 그들은 내장 요리법을 발전시켰다. 일본 어디든 한국식이 분명한 이런 요리들이 잘 팔린다.

고춧가루는 빠졌지만, ‘모츠나베’는 영락없는 곱창전골이다. 소 위인 양은 아예 외래어를 뜻하는 가타카나로 표기되어 있고 발음도 똑같이 ‘양’이다. 그렇지만 내용은 다르다. 각종 내장 구이가 일본식의 꼬치에 꿰어져 비싸게 팔린다. 심지어 한국에서 ‘미니 족’이라고 하여 재래시장에서나 싸게 사먹는 돼지 발을 그럴싸하게 구워 비싸게 내놓고 있다. 내장을 다루는 것도 매우 정교하다. 식도, 흉선처럼 한국에서 그냥 버려지다시피 하는 부위를 고급화시킨다. 고환 같은 성기와 허파, 폐 부위를 가공하는 기술도 발달해 있다. 그저 순댓국에 넣는 재료 구별이 어려운 내장이 아니라, 각기 하나의 이름을 얻었다. 본디 가치라는 건 이름을 부르면서 시작된다. 이를테면, 돼지머리조차 세밀하게 도축하면 각기 다른 부위를 많이 얻어낼 수 있다. 거의 해부학적 식견이 동원되어 살점을 발라낼 수 있다.





일본은 이미 돼지 혀도 가공해서 구우면서 높은 가격을 매기고 있고, 같은 우설(소 혀)이라도 부위별로 요리법과 가격을 달리해서 판다.

이런 배경에는 값싼 부위를 사들여 비싸게 팔고자 하는 마케팅 전략이 있는 것인데, 내장 요리의 원조라는 우리가 보기에는 선수를 빼앗겨 버린 듯한 기분도 든다. 이 정도면 소나 돼지를 가장 세분하여 요리해 먹었다는 우리 민족의 자랑(?)이 옛이야기가 되었다.

삼겹살과 한우 고깃값이 오른다고 아우성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특정 부위만 많이 팔리니까 잘 안 먹는 부위가 남아돌더라도 더 많이 길러내고 수입해야 한다. 한국이 세계의 삼겹살 진공청소기라는 말은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뒷다리는 남아돌고 목살과 삼겹살만 찾으니 그렇다. 기왕 기르고 잡은 것, 내장도 골고루 요리로 만들어서 먹어내면 죽은 고기가 제몫을 다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박찬일 | 음식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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