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망해가는 청년창업

불황 중에도 이른바 홍대 연남동 상권은 성업하고 있다. 원래 장사가 잘 되던 곳으로 꼽히는 홍대앞 상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철길을 폐쇄하고 공원이 생기면서 권역이 넓어진 것이다. 나들이 손님과 청소년들이 몰리면서 이쪽에도 큰바람이 불었다. 자고 일어나면 권리금이 두 배씩 오르고, 임대료가 뛰었다. 골목 구석구석도 이런 바람을 업고 상권이 개발되고 있다. 몇 년 전에 아무개 인터넷 사이트에 등재되었던 홍대앞 상권의 먹거리 집들이 대략 500여 개였는데, 이제는 다섯 배 내지 여섯 배 정도로 늘어난 것이다(열 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 상권이 커지고 있으니 모두 장사가 잘 되는 까닭으로 보기 쉽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도 못하다. 나는 이곳을 가끔 돌아보면서 어떤 막연한 두려움이 일었다. 그 두려움의 원인을 하나씩 생각해보았다. 우선은 자본과 모리배들이 가난한 세입자들을 착취하고 있다는 의심이었다. 놀랍게도, 이 동네는 바닥 권리금이란 것이 활개를 친다. 본디 권리금이란 장사를 해서 생기는 유무형의 가치에 대한 보상이다.

그런데 이 동네는 그것이 세입자들끼리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세입자와 건물주, 그리고 그 사이에 낀 악덕 부동산업자들 간에 이루어지는 계약이 된다. 기존의 오래된 건물을 헐고 새로 건축을 하면, 틀림없이 ‘○○부동산 독점’이라는 광고판이 붙어 있다. 여러 중개업자가 모두 거래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특정 업체와만 가능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바닥 권리금을 형성하고, 특정 부동산업체가 그것을 건물주와 나눈다는 의미다.




또 하나의 두려움은 이렇게 많은 가게들이 그래도 ‘장사가 되는’ 지역에 몰려들어 이전투구해서 얻을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벌써 상당수 가게는 덤핑 판매를 하고 있다. 매출이라도 유지하는 쪽으로 가게를 굴리겠다는 뜻이다. 이익률은 떨어지고, 매출도 동시에 떨어질 때 그 가게의 미래는 자명하다. 문을 닫아야 하는 것이다. 새로 생기는 가게의 면모를 보면, 대개는 청년 창업이다. 정부의 실업 대책에 발맞추고 있는 것일까. 고용률이 떨어지면서 정부는 청년 창업을 독려하고 있다. 청년들의 다수가 월급 받아서 결혼하고, 아이 낳아 기르는 보편적인 인생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 지 오래다. 그들이 뛰어드는 곳이 바로 창업시장이고, 그 다수가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음식료업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음식료업도 상당한 기술력이 있어야 유지가 가능한 업종이다. 그 틈에 프랜차이즈 회사들이 치고 들어오고 있지만, 프랜차이즈의 절대다수가 가맹자와의 공생에 기여하고 있지 않다. 오죽하면 ‘상생형 프랜차이즈’라는 슬로건을 정부가 아니라 어떤 민간 프랜차이즈 업체가 선언하고 나섰겠는가. 아마도 이 상권의 거대한 치고받는 싸움에서 누군가는 살아남고, 또 누군가는 가게를 접을 것이다. 그들에게 ‘인생은 원래 패배하면서 성장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계발서 저자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도 저 길 안쪽에서 망한 가게를 뜯어내는 철거작업이 한창이다. 한때의 청춘의 희망이 무참하게 뜯겨 마대자루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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