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굴과 소주 한잔


어김없이 철은 돌아온다. 우리는 시장의 음식으로 알아챈다. 굴이 흥성하구나, 눈 오는 밤 굴 회에 찬 소주 한잔을 마셨던 기억이 난다. 음식은 기억의 매개다. 냄새와 시각적 이미지는 순식간에 사람을 순간 이동시켜버린다. 굴을 보니, 온갖 이미지가 떠오른다. 친구와 함께 달렸던 통영의 해안도로, 박신장(굴 까는 작업장)의 전쟁터 같은 노동, 무엇보다 천북굴이 생각난다. 버려진 양식굴이 스스로 새끼를 키우고 대를 이어 그 죽은 껍질이 하나의 거대한 인공섬을 이룬 천북굴의 독특한 모양 말이다. 대개는 천북의 천막 굴집에서 굴을 구워 먹지만, 그 녀석들의 상당수가 앞바다에 있는 그 인공섬이다. 굴이 하나의 ‘나라’를 이룬, 인간은 기어이 거기 가서 굴을 캐온다. 양식 굴이었지만, 이제는 자연산이 된 운명의 굴밭. 어디나 굴 작업장은 고단한 노동의 현장이다. 알뜰한 낭만 따위는 없다.

앞서 박신장에서는 말을 잘 못 붙인다. 많이 깔수록 돈이 붙는 도급형 노동이기 때문이다. 손놀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 그걸 보고 감탄만 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치사한 낭만주의자들이다. 노동은 가혹하다. 천북굴을 캐러 가자면, 발이 쑥쑥 빠지는 갯벌을 한참 걷곤 한다. 망망한 펄에서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면서 우리의 육체란 얼마나 미약하고 외로운지 알게 된다. 덕적도 굴도 그랬다. 자연산 굴이 해안 갯바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것이 한동안 인천 쪽으로 나가서 아주 인기 있었다. 덕적도 굴, 이러면 먼저 사갔다. 이제 그 굴은 찾기 힘들다. 누가 있어야 캐지, 할머니들은 연로하고 굴 캘 기력이 줄어들었다. ‘쪼새’라고 부르는 뾰족한 굴 캐는 연장을 들고 허리 굽은 할머니가 갯바위에 앉는다. 그렇게 번 돈으로 자식들 공부시킨 할머니들이 이제는 너무 늙어 쪼새 쥘 힘이 없을 것이다.



그나마 ‘소굴’이라고 부르는 서해안산 작은 굴을 보면 반가울 뿐이다. 남해안 굴도 해류와 지형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생산한다. 통영이 알이 굵고 통통하며 묵직한 수하식(줄에 매달아 물에 넣어 기르는 방식)으로 이름을 높였다. 같은 남해라고 장흥, 남해로 오면 투석식도 있다. 생산량이 적은 방식이지만, 지형을 이용해서 조수간만이 차이지는 바닷가 돌에 굴을 붙여 기르는 것이다. 물론 굴은 먹이를 주지 않은 ‘반자연산’이다. 작은 굴은 묵직한 맛은 덜하지만, 집중된 감칠맛이 있다. 물론 더 비싸고 생산량이 적다. 간장을 찍어 그렇게 생산된 굴을 맛보는 것은 이 겨울을 기다리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본식으로 초회를 해도 좋고, 굴국은 또 얼마나 시원한가. 아니면 무를 넣고 굴밥을 지어보시라. 양념장 술술 뿌려 비벼보시라. 그것도 아니면 일본식으로 굴튀김, 굴전을 부쳐 막걸리를 곁들이리라. 굴을 제대로 먹을 철이 올해는 좀 빨리 오는 듯하다. 그 굴이 끝나갈 즈음, 봄이 온다는 것. 그렇게 세월이 간다는 의미.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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