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바다에 대한 책임

예전에 본 충격적인 장면 하나. 깊은 밤에 마포 어딘가를 걷고 있는데 길가 하수구에 무언가를 부어서 버리는 사람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검은 콜타르 같은 찐득한 액체였다. 바로 옆에는 닭튀김집이 있었다. 그가 황급히 사라졌고, 시민정신 없는 나는 구태여 물어볼 여지가 없었지만, 아마도 기름이었던 것 같다. 나는 바보처럼 ‘저 기름을 정화하는 데 필요한 깨끗한 물의 양은 서울운동장을 채워도 모자랄 거야’ 이런 계산을 하고 있었다.

요새 폐유랄까, 쓰고난 식용유는 거둬가는 분들이 있어서 알뜰하게 처리된다. 거둬들인 기름이 쓸모가 있기 때문에 기름 거두는 일도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그분은 한 말에 얼마씩 돈도 주신다. 폐유를 처리해 주시는데 돈까지 주니 황송할 뿐이다. 재생과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과 기술이 높아지면서 이런 시스템이 작동하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제 튀김집에서 몰래 기름 버릴 일이 없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끔찍한 뉴스가 나온다. 우리는 수세식 화장실을 쓴다. 우리 몸에서 나온 고형물이 시원하게 씻겨 내려가고, 그것이 ‘종말처리시설’을 통해 깨끗하게 처리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과문하니, 그 시설이 첨단의 어떤 설비와 약품을 써서 ‘고형물’을 완벽하게 분해해 흔적 없이 만들어버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 생화학적, 물리적 해결책을 완벽하게 갖고 있지 못하다. 종말 처리 후에도 ‘물리적 최후’는 남는다. 이것을 ‘오니’라고 한다. 끈적하고 더러운 진흙 같은 물질이라는 뜻이다. 그 오니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듣고나면 입맛이 싹 사라진다. 바다에 버려왔던 것이다. 넓고 깊은 바다의 무한한 능력을 믿고 있는 것일까. 바다가 그 오물을 다 끌어안고 언젠가는 깨끗하게 분해해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한동안 가축 분뇨도 바다에 버렸다. 그러고는 바다가 오염됐네, 생선에서 수은이 나오네 하는 게 우리의 가증스러운 이중성이다.





심지어 맑은 동해바다에 그 오물을 버리고는, 그 일대에서 대게잡이를 금지시킨 적도 있다. 합법적인 오물 폐기뿐 아니라 불법적인 투기도 많다.

큰 생선 밥통을 갈라보면, 인간의 생활쓰레기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농담이지만, 금반지가 나올지도 모르니 생선을 처리할 때 위를 유심히 보라는 말도 있다.

바다는 투명하게 깨끗하고, 오염된 땅과 다른 청정한 ‘이데아’라고 생각해왔던 오랜 관습은 사실상 허구다. 더 싸게 더 많이 가축의 고기와 해산물을 먹고 살자는 우리의 욕망은 바다조차 내버려두지 않았던 것이다. “바다는 거대한 엄마, 욕망으로 영원히 새끼를 낳는다”고 한 건 해양소설로 유명한 쥘 베른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름다운 비너스는 바다에서 생긴 거품에서 탄생한다. 진화론은 인간도 저 바다에서 잉태돼서 뼈와 허파를 가지게 되었다는 걸 지지한다. 우리는 일본과 함께 해양 폐기물 투기를 하던 몇 안되는 나라들 중의 하나다. 욕망과 무관심은 반드시 보복을 당한다는 게 세상사의 뚜렷한 이치다. 바다에서 뭘 건져먹고 살아가자면, 우리는 책임을 가져야 한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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