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주방 연기는 어디로 가는 걸까

예전에 프랑스 요리사들의 평균 수명은 30세를 넘기지 못했다고 한다. 전기가 발명되기 전의 일이다. 주방이 주로 지하에 있었는데, 배기가스를 내보내는 것이 고작 굴뚝뿐이었으니까. 역풍이라도 불면 주방은 아수라장이 되었을 것이다. 굴뚝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대기 상태에 좌우되니까. 우리 부엌도 마찬가지였다. 나무와 검불, 석탄 같은 화석연료를 때면서 살강으로 그 연기가 빠져나가길 기대하는 게 고작이었다. 지방의 몇몇 식당에 가보니, 각종 고기를 배출 팬도 없는 주방에서 굽고 있었다. 그 연기를 ‘걸러내는’ 장치가 요리노동자의 폐였던 것이다.

주방은 산업보건의 악조건에 속한다. 한여름 배 만들고 쇠 만드는 중공업 현장만큼은 아니겠지만, 주방도 만만치 않다. 여담인데, 조춘만씨라는 사진가가 있다. 중공업 현장에서 배관과 용접 일로 잔뼈가 굵은 분이다. 그의 회고기를 읽다보니, 1970년대에는 월간 700시간 작업도 예사였다고 한다. ‘야리끼리’라고 해서, 도급식 작업이 보통이던 시절의 이야기다. 사람이 아니라 기계로 취급하던 때다. 지금이라고 해서 썩 달라진 것도 아니겠으나. 가스라는 비교적 청정한 연료가 나오기 전에, 주방은 최악의 환경이었다. 시내 식당에서 손님용 방은 곧 직원들의 숙소이기도 했다. 밤새 연탄불을 갈아야 했으니 누군가 가게를 지켜야 했던 것이다. 그 연탄을 캐던 탄광노동자들은 진폐증에 신음하고, 연탄을 쓰는 요리사들도 폐와 뇌질환으로 고생했다. 부실한 배기 시스템, 좁은 주방, 고된 노동은 요리노동자의 몸을 갉아먹었다.

조지 오웰은 소설가로 알려져 있지만 대단한 다큐멘터리도 많이 남겼다. <위건부두 가는 길>에서는 열악한 환경에서 인간 이하의 노동에 신음하는 탄광의 실태를 고발했고, <런던과 파리의 따라지 인생>이라는 작품에서는 호텔 지하의 더러운 주방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접객용 홀과 대별되는 주방은 그야말로 ‘따라지 노동자’들의 목숨을 조금씩 무너뜨렸다. 이런 상황은 영세한 식당을 중심으로 여전히 반복된다. 배기 설비에 투자할 돈이 없어(또는 이해가 부족해서) 음식 연기가 가득 찬 주방을 방치한다.





방송에서 가정집 주방의 초미세먼지 농도를 조사해서 보도한 적이 있다. 생선 한 마리 굽는데 1㎥당 2000㎍이 넘는 수치를 보였다. 대기에서는 100㎍만 넘어도 적색경보가 발생되는 수치다.

영업용 식당 주방은 훨씬 많은 양의 구이와 튀김을 하고 있으니 그 수치보다 더 높을 가능성이 있다. 배기 시스템을 제대로 설치하자면 돈이 좀 든다. 기체역학이랄까, 급배기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 필요해서 전문가의 영역이다.

그러나 대개 주먹구구식으로 설치하는 경우가 많다. 빚내서 차린 영세한 치킨집에서 배기 설비에 신경을 쓸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까. 부진한 영업에 마음이 무너지고, 튀김 연기에 몸도 스러진다.

새해가 시작됐다. 올해 식당 종사자들은 웃을 수 있을지. 눈앞에 뿌연 연기가 가득하다. 마치 식당의 올해 사정을 예고하는 것 같아 착잡하기만 하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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