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혀를 호강시키는 매생이국

예전에 전라도 출장을 가면 어떤 흥분에 들뜨게 마련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였다. 거짓말 좀 보태서 ‘홍어가 백반집 반찬으로 나온다’고 믿었다. 분식집에 가도 젓갈 세 개에 김치 세 종류가 기본이라고 했으니까. 하다못해 대학가 앞에서 파는 값싼 백반도 전라도는 다르다고 했다. 광주의 조선대 앞 골목에 늘어서 있던 백반집들은 여전한지 모르겠다.

한 집에서 매생이국을 얻어먹은 적이 있다. 곱게 빗은 처녀 머릿결처럼 곱고, 입에 넣으면 올이 가늘게 풀려서 혀를 간질이던 묘한 질감이 희한하게 여겨졌다. 파랫국이나 김국은 몰라도 매생이라니. 그때 밥 퍼주던 ‘아짐’이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뜨거우니 조심하라고. 매생이국은 김이 나지 않아 미운 사위 오면 주는 국이라며 멋모르고 숟가락을 푹 넣었다가는 입천장이 홀랑 벗겨진다고. 그러고는 뭐가 그리 좋은지 깔깔 웃으셨다. 실제로 미운 사위에게 주던 기억이 나셨던 걸까. 이후 전라도 해안지방을 돌아다닐 때 한겨울 할매들의 좌판에 올라 있던 것들이 바로 그 매생이였다.

매생이를 서울에서 흔하게 보게 된 건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겨울에 해조류가 시장에 많이 깔리는 건 본디 그런 것이지만, 매생이는 없었던 것 같다. 매생이가 서울에도 흔해지기 시작한 건 10년 안쪽의 일인 듯하다. 언제부터인가 수산시장 판매대에 곱게 사리를 지어서(수량 단위를 ‘좨기’라고 한다) 올라앉아 있으면, 아하 겨울이구나 했다.

매생이와 굴은 제철이 비슷하고 궁합이 좋다.

매생이굴국을 끓이면 기가 막히다. 별다른 양념도 필요없다. 그냥 담백하게 마늘이나 좀 풀어서 끓이면 된다. 굴이 질겨지는 걸 막으려면 굴을 나중에 넣어 한소끔 끓여야 한다. 겨울에 맛있는 홍합을 넣어도 ‘아이고 형님’ 하며 반긴다. 죽을 끓여도 아주 맛있다.





매생이 올이 하나하나 풀려서 촉촉하게 녹진한 쌀과 잘 섞이면 질감과 감칠맛이 살아난다. 칼국수에 풀기도 하고, 만둣국이나 떡국에도 잘 어울린다. 서양요리를 하는 요리사들에게도 인기가 많아 바삭한 칩처럼 만들거나 파스타, 리조토의 재료로도 쓴다. 감칠맛이 아주 뛰어나고 가느다란 명주실 같은 질감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원래 매생이는 갯가에서 환영받는 해조는 아니었다고 한다. 약품을 뿌려서 매생이를 죽이던 때가 있었던 것이다. 김이 돈 되던 시절의 이야기다. 이제는 매생이 양식이 크게 늘 만큼 대접이 달라졌다. 세상사 모를 일이다.

하기야 파래김이 제일 싸던 때도 있었다. 요즘은 까만 김보다 외려 더 비싼 대접을 받는다.

올해 추위가 더디 와서 수온이 높은 까닭에 바다 농사가 어렵다고들 한다. 김과 미역, 매생이도 키가 잘 자라지 않는 모양이다. 매생이를 사서 먹고 남은 건 냉동 보관해도 맛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담백한 매생이 요리를 먹을 철이다. 단, 국을 끓이면 혀는 조심하시기 바란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