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호루몬야키를 아십니까

오사카 JR 쓰루하시(鶴橋)역. 전차에서 내리면 이곳이 ‘불고기의 성지’임을 눈치챌 수 있다. 고기 굽는 냄새가 복잡한 역전의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냄새뿐만 아니다. 미처 빠져 나가지 못한 연기가 시야를 뿌옇게 가렸다. 자이니치(在日, ざいにち)라고 부르는 재일동포들의 고단한 세월이 묻어 있는 공간이다. 한 ‘구시니쿠’집을 들렀다. 숯불을 피워 고기와 내장을 굽느라 실내는 혼돈에 휩싸여 있었다. 빼곡한 손님들과 담배연기까지 열기를 뿜어냈다. 재일동포가 대를 이어 운영하는 이런 고기구이집들은 오사카의 한 문화를 이룬다.

몇 가지 꼬치를 시킨다. 대창과 안창, 간과 염통 같은 소 내장이 주로 나온다. 놀랍게도 ‘우루데’라는 부위도 있다. 소의 성대 쪽, 그러니까 ‘울대’라고 부르는 부위를 구운 것이다. 알려진 대로, 이런 요리를 만들어서 일본 음식문화사의 한 자리를 차지한 이들은 바로 재일동포다. 일제강점기에 강제로 끌려간 후 눌러앉거나 조국의 가난을 피해 자발적으로 건너간 이들이 주축을 이룬다. 더러는 해방 후 귀환한 뒤 다시 밀항 등으로 건너온 이들도 있다.

당시 조국의 정치·경제적 상황이 최악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해방 후에도 여전히 재일동포는 차별의 대상이었다. 그들이 주로 종사한 직업은 당연히 ‘비정규직’이랄까, 일본인들이 꺼리는 일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공무원이나 전문직, 회사원은 될 수 없었다. 암시장과 허드렛일이 그들의 몫이었다. 한국의 화교들이 중국요리점으로 생계를 이었듯이 이들도 소 내장을 구워 팔았다. 그들은 이 요리를 호루몬야키라고 불렀다. 일본어로 ‘버려진 것 구이’라는 뜻이었다. 당시 일본인들은 고기를 잡으면 내장은 버렸고, 이것을 구해서 구워 팔기 시작한 것이 유래가 되었다.



고깃집의 메뉴판을 보았다. ‘김치’가 있다. 배추와 무, 오이김치가 각기 있으며 모둠접시도 올라 있다. 한 접시 800엔. 작지 않은 가격이다. 매운 연기에 눈물을 흘리며 김치 한쪽을 씹었다. 한국식보다 달지만 김치 고유의 맛은 살아 있다.

자이니치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극적인 ‘자연인’이다. 한국인도 북한인도 일본인도 아니다. 그저 ‘코리안’이다. ‘조선’을 국적으로 하고 있는 이들은 흔히 북한 국적으로 오해받지만, 실상은 다르다. 해방 전까지 그들의 국적이 조선이었고, 남북의 정부가 수립된 후에도 어느 쪽의 국적도 취득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없는데, 조선 국적을 가진 이들. 디아스포라라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희비극의 한 상징으로 다가왔다. 손님들은 끊임없이 밀어닥쳤고, 고기 굽는 동포들의 손은 더욱 바빠졌다. 일본 소주에 취한 것인지, 매운 연기 때문인지 내 두 눈은 충혈되기 시작했다. 다시 소 내장 한 점을 씹었다. 쓰루하시역 앞의 뿌연 연기는 밤새 사라지지 않았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