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임종 음식’

한 언론매체와 인터뷰를 하는데, “죽기 전에 꼭 먹고 싶은 음식은 뭐냐”는 질문이 있었다. 이른바 임종(臨終) 음식인가 보다. 미국의 몇몇 주에서는 사형수가 ‘최후의 만찬’을 주문할 수 있다. 거창한 음식은 별로 없고, 대부분 햄버거나 파이 같은 간단한 음식을 주문한다고 한다. 음식은 물리적으로는 영양소의 집합체이지만, 사람의 정신과 조응한다. 그래서 ‘솔 푸드’니 ‘컴포트 푸드’라는 말이 나온다.

사형수들의 그 메뉴는 아마도 그런 음식일 것이다. 그들에게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을 테고, 그때 먹었던 음식을 다시 찾고 싶었을 것이다. 한 냉면집 취재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간혹 휠체어에 탄 노인들이 나타난다. 죽기 전에 냉면 한 그릇 드시겠다는 거다. 대부분 냉면을 남긴다. 의욕과 달리, 몸이 받아내질 못하는 거다. 어떤 냉면집은 2층에 있는데, 창밖에서 웬 고함소리가 들려서 나가보니, “냉면 달라”는 노인이 서 있었다. 무릎이 아파 2층에 올라갈 수 없어 바깥으로 냉면 좀 달라는 얘기였다. 배달을 안 하는 집이지만, 기꺼이 내려드렸다.

그러고는 발길이 끊어졌고, 그 가족들이 찾아오면서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 노인에게 냉면 한 그릇은 단순히 8000원짜리 탄수화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북 실향민이었다는데, 고향 음식을 한 그릇 하면서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기억했을 것 같다.





또 다른 식당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앰뷸런스 타고 오시던 노인, 휠체어에 의지해서 아마도 마지막일 단골 식당 나들이를 하는 노인의 기억이다.

최근 ‘청진옥’이라는 오래된 식당 한 군데를 들렀다. 100년을 향해 가는 노포다. 홀에서 74세 되신 지배인을 만났다. 50년 가까이 근무하고 있다. 반세기를 일했으니, 그 식당의 역사라고 불러도 되겠다. 그는 아주 특별한 ‘일’을 한다. 오래된 단골들의 얼굴과 식습관을 기억하는 일이다. 단순한 해장국 메뉴지만, 단골들은 뭘 더 넣고 덜 넣는 식의 ‘자기만의 주문 메뉴’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걸 기억해주는 노인 ‘웨이터’가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는가. 주인은 3대로 대물림되어 젊은 사장이 홀에서 일하므로 오래된 단골의 얼굴을 몰라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지배인이 살아 있는 동안은 단골을 환하게 맞아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겠다. 그는 죽는 날까지 이 식당 홀을 지킬 것이라고 한다. 그런 노익장도 놀랍고, 정년퇴직 같은 건 생각도 안 하는 사장은 더 놀랍다.

그저 소내장과 뼈로 끓인 해장국 한 그릇이지만, 그 안에는 많은 이들의 기억이 중첩되어 있다. 나는 죽기 전에 먹고 싶은 음식이 해장국은 아니겠지만, 이런 기억이 살아 있는 식당들이 더 많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일개 개인의 식당이지만, 공공재가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임종 음식을 드시러 오는 노인 단골들이 갈 곳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