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김해 돼지국밥

돼지국밥이라면 다들 부산을 떠올리지만, 아직도 원조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경남이 먼저라는 말도 꽤 신빙성을 가지고 있으니까. 대체로 우리 민중사는 기록을 잘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아 정교한 고증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하긴, 순댓국과 순대조차도 우린 그 역사를 정확히 모르고 비어 있는 공간에 추측을 더하곤 한다. 그때마다 등장하는 게 고려를 지배했던 원나라와 남방유래설(제주도의 돼지 애호 역사에 연결지어)이다.

어찌 되었든 돼지국밥은 이제 슬슬 전국적 인기 메뉴로 들어갈 태세다. 홍어가 대구에 등장할 정도이고, 음식의 지역적 경계는 이미 무너지고 있으니,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싶다. 노무현 대통령을 소재로 했던 송강호 주연의 영화에서 돼지국밥은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했다. 극중에서 구속 학생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이 바로 돼지국밥집이었다. 노무현, 아니 송강호가 배부른 변호사 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시대정신에 눈뜨게 된 것도 이 국밥집 아주머니의 일갈 때문이었다. 국밥은 민중의 음식이라고 한다. 전형적인 노동자의 음식이다. 재빨리 한 그릇 먹고 다시 일할 수 있는 ‘노동식량’이 바로 국밥이었다. 그래서 국밥의 온도는 지나치게 뜨겁지 않은 게 관례였다. 토렴이라고 하는, 식은밥을 따뜻하게 말아내는 기술이 발휘되기도 했다. 목에 수건을 두른 노동자가 국밥을 훌훌 들이마시는 장면은 현대사의 고단하고도 눈물겨운 증거로 기억되기도 한다.



국밥은 별다른 반찬이 필요 없고 빨리 먹을 수 있으며, 열량은 충분하다는 장점이 있다. 비싸봐야 국밥이고-물론 2만원짜리 국밥을 파는 집도 있지만-들어설 때 기죽지 않는 허름한 집에서 판다. 그래서 더욱 민중적 애호를 받는 것이 아닐까. 서울에 돼지국밥집이 하나둘 생긴다. 유달리 이 국밥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흥미로운 것은 돼지국밥이라고 해서 시키면 대개는 순댓국밥을 내준다는 것이다. 이름만 돼지국밥인 것이다. 돼지국밥이라고 하면, 하나의 전형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고기를 주로 써서 맑은 국물을 내든, 뼈를 한참 고아서 뽀얗게 만들든 돼지국밥다운 기상이 있어야 한다. 잡다하지 않고 직선적이며 화끈한 남부 경상도의 맛이 있어야 한다. 모호한 표현이지만, 돼지국밥도 워낙 여러 가지 버전(?)이 있으니 이런 묘사로 아쉬움을 달래야 한다. 딱 하나, 확실히 따라야 할 것이라면 ‘정구지’다. 멸치젓갈 넣어 삼삼하게 무친 부추무침이 나오지 않으면 돼지국밥답지 않다.

김해는 돼지국밥의 원조 지역 중의 하나로 자부심이 드높다. 시내의 명소에 갔더니 한겨울 추운 바람에도 줄이 길다. 김해는 거대한 돼지 축산과 가공단지를 유지하고 있다. 대일 돼지고기 수출의 전진기지이기도 했다. 부드럽고 시원한 국물에 감칠맛 도는 돼지고깃점을 씹으니 서울에서 맛보지 못한 제대로 된 맛이 느껴진다. 식당 곳곳에서 탕 그릇을 비우는 현지인들의 강력한 억양의 사투리가 들려오고, 이것 참 멋진 국밥인 걸 하고 감탄하고 말았다. 서울에서 진짜 돼지국밥을 하는 집이 있으면 좀 알려주시기 바란다. 매번 부산이나 김해를 갈 수는 없는 일이니까.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