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이름만 돼지갈비

어릴 때 하굣길이 멀고도 길었지만 무엇보다 배가 고파 힘들었다. 마침 그 중간쯤 되는 골목에 돼지갈빗집이 몇 개 있어서 회가 동하게 했다. 이른 오후에도 갈비 굽는 사람들이 꽤 있어 뿌연 연기를 연방 길에 뿜어냈다. 그 시절에는 삼겹살보다 갈비였다. 주로 연탄을 때서 구웠다. 한번은 막 문을 연 갈빗집에서 대낮에 고기를 구워 먹고는 구토를 하고 쓰러진 적도 있었다. 열 개가 넘는 드럼통 탁자에 연탄을 막 피운 터라, 연탄가스가 가게 안에 가득 찼던 까닭이었다. 그런 해프닝도 있었지만 지금도 연탄불에 고기 굽는 가게는 그냥 지나치기 힘들다. 불땀 좋게 불문을 열어두고 석쇠가 빨갛게 달아오르면, 간장 먹은 돼지갈비를 척척 올려 굽는 재미! 천하일미가 달리 없다.

돼지갈비 요리법은 세계적으로 다양한데, 한국식이 아마도 최고가 아닐까 생각한다. 양념 때문이다. 간장은 이미 그 자체로 강력한 조미료이니 고기 맛을 두 배로 돋운다. 여기에다 설탕까지 넣어서 굽는 까닭에 혀가 녹도록 맛이 좋아진다. 설탕이 불에 닿으면 캐러멜이 되는 효과가 있어서 중독적인 맛을 내는 것이다. 최근에 지나치게 설탕을 많이 넣어서 이것이 요리인지 디저트인지 헷갈리는 게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런 특별한 사랑은 대한민국을 세계적인 돼지갈비 수입국으로 만들고 있다. 미주 지역과 유럽의 돼지갈비를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인다. 그쪽 나라에서는 돼지갈비 값이 그리 높지 않고, 선호도가 낮은 부위이기 때문이다. 얼려서 들어오니 품질이 뛰어나지 않지만 우리의 수요를 대려면 수입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이러고도 우리가 진짜 돼지갈비를 만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돼지갈비라고는 하지만, 다른 부위를 섞어 내는 경우가 더 흔하다. 아예 갈비 부위는 전혀 쓰지 않고 값싼 뒷다리를 붙여 내는 집도 많다. 마냥 비난할 일도 아니다. 속사정이 있다. 우선 돼지갈비라는 부위가 구이로 적당한가 하는 점이다. 갈비는 조직이 복잡하고 퍽퍽한 살과 질긴 조직이 뒤섞여 있다. 100% 갈비를 판다는 집도 상당수는 갈비와 잇대어 있는 삼겹살 쪽 부위를 같이 썰어서 낸다. 삼겹살이 아주 비싼데도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건, 갈비 자체로 충분한 구잇감을 얻어내기 어려운 해부학적(?) 조건 때문이다. 이런 문제로 대법원에서도 갈비뼈에 고기를 붙여 팔아도 조건만 충족시키면 갈비라고 불러도 된다고 판결했던 것이다.





이런저런 상황에서 여전히 돼지갈비는 뭔가 불합리한 상태에 있다. 파는 사람도 관습적으로는 문제가 안되지만 순전히 갈비가 아니니 찜찜하고, 사먹는 사람은 진짜를 내는지 불을 켜고 쳐다본다. 갈비뼈가 한 개라도 같이 나오는지, 이 살점은 어느 부위일까 추리를 한다. 일종의 코미디인데, 시장에서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은 지 오래되었다. 뻔히 서로 속사정을 알면서 돼지갈비라는 이름을 버리지도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딱 부러지는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간장양념돼지구이라고 부르자니, 어설프고 ‘맛’이 안 난다. 딱한 노릇이다. 이 맛 좋은 요리에 떳떳한 이름 하나를 지어주지 못하는 우리들의 옹색함이라니.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