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용재의 건축과 음식 사이

<현미 선생의 도시락>과 <식객>, 맛집에 미친 우리 음식 문화



얼마 전 <현미 선생의 도시락>이라는 만화책을 읽었다. 음식을 주제로 한 일본 만화책이야 사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서 <심야 식당>이후로는 딱히 관심을 가져본 것이 없었다(심야식당 또한 4권 이후로는 읽을 필요를 못 느꼈다. 만화책 자체가 딱히 더 재미없어졌다기보다, 그런 주제를 그런 방식으로 엮는다면 곧 힘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4,5 권까지 그럭저럭 이어나가는 것도 다행이라고 할 정도?). <현미 선생...>을 읽게 된 건 엉뚱하게도, 어디에선가 주인공인 현미선생이 나와 닮았다는 ‘제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만화책 자체에 대한 그것보다 주인공에 대한 호기심이 지갑을 열도록 만들었다고나 할까. 

주인공인 현미(유키 겐마이, 結成玄米) 선생은 동경 한 대학의 농학부 시간 강사로 부임한다. 결강이 잦은 스승의 식문화사 수업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다. 학기 시작부터 잊혀 가는 일본의 전통음식(채소절임)이나 농사의 중요성 등을 강조한다. 현대화된 삶을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어쩌면 시대에 뒤떨어진 이러한 사고방식이 잘 먹히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시간이 지나면서 음식과 건강을 중요시하는 현미 선생의 가치관은 학생들의 공감을 얻기 시작한다. 



솔직히 말하면 만화의 스토리 자체는 그렇게 재미있는 편이 아니다. 더도 덜도 아닌, 딱 그만큼의 일본 만화랄까? 기본적으로 비뚤어진 성격의 인간이라서 그런지 저 먼 옛날 <우동 한 그릇>과 같은 일화에서부터 대대손손 내려온 듯한 일본 특유의 감동 “돋는” 일화 또한 ‘뭐 일본 만화가 다 그렇지’라는 정도의 기분으로 받아들이고 말 뿐이다. 조금 박한 평가를 내리자면, 이 만화 또한 우리가 쉽게 구해서 읽을 수 있는 일본 음식 만화의 한 종류일 뿐이다. 

문제는, 이렇게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음식 소재 만화책 또한 사실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에게도 물론 음식을 소재로 한 만화가 있다. 거의 유일에 가까운 음식 만화이기 때문에 모두가 다 안다. 그 제목은 <식객>이다. 최근 27권으로 완간했으니 우리나라 만화 치고는 드문 행보를 지속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화를 바탕으로 영화도 세 편이나 만들었다. 

그렇다면, <식객>은 정말 음식 만화인가? 물어보나 마나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제목도 <식객>에 작가, 그것도 만화계의 원로 작가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직접 취재한 음식 이야기를 그림으로 옮긴 것 아닌가? 그러나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식객>은 사실 딱히 재미도 없고 음식 만화들 사이에서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현미 선생의 도시락>과 같은 만화책보다도 음식 만화로서 자격 미달인 부분이 있다. 



만화라는 매체의 장점은 무엇인가? 이미지 위주의 정보 전달 방식이다. 그를 위해서 글이나 기타 매체로 된 정보는 만화에 맞는 형식으로 재가공되어야 한다. 식객에서 제공되는 정보는 재가공을 완전히 거치지 않은 표가 너무 많이 난다. 대부분의 정보가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하거나, 아니면 만화의 각 컷 사이에 분주하게 들어간 글로 전달된다. 등장인물은 만화라는 매체로서 최소한의 예의를 다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느낌이다. 설명이 장황한데, 대사들만 전부 따로 떼어서 문서 편집기에 집어넣거나, 글로만 된 책으로 낸다고 생각해보자. 정보를 받아들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건 즉, <식객>이 만화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말이 너무 많다.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그보다 그의 문하생의 솜씨로 밖에 보이지 않는, 성의 없는 그림들은 이러한 만화적 빈약함을 한층 더 두드러지게 만든다. 내 눈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지만, 어떤 페이지의 여자 등장인물은 정황상 울어야 되는데, 정말 웃는 것처럼 보여서 당혹스러울 지경이었다. 

그 다음으로 빈곤한 만화적 상상력을 꼽고 싶다. 작가가 전국 각지를 취재했다는 건 아는데, 정말 무엇을 위해 취재한 것일까? 그에 대한 물음의 답도 위에서 언급한 ‘정보의 재가공’의 측면에서 구할 수 있다. 각 일화에 딸려 오는 취재 노트를 보면, 그 일화에 등장한 음식을 잘 한다는 소위 ‘맛집’이나 그 음식의 사진이 실려 있다. 그리고 그 사진들은 대부분 일화에서 그대로 그림으로 바뀌어 등장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작가의 시선이나 상상력은 무슨 역할을 하는가? 찍은 사진을 그림으로 그대로 옮긴 뒤 사람을 몇 명 등장 시키고, 그들의 장황한 대사를 통해 음식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식객>의 전개 방식이다. 작가는 단지 기능적으로 그림을 그릴 줄 알기 때문에 작가인 것일까? 

그러한 취재의 속성을 생각해 보았을 때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전문성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별 재미도 없고 딱히 다른 음식 만화책들보다 두드러질 구석도 없는 <현미 선생의 도시락>보다도 식객은 그 전문성이 떨어진다. 이 부분은 전문적인 이야기 작가의 부재를 탓하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식객>은 평일 오후 여섯 시쯤 각 방송국에서 방정맞은 성우의 절규를 내세워 내보내는 맛집 소개 프로그램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허영만 정도의 원로 만화가라면 특정 맛집을 소개하는 수준 너머에 있는 무엇인가를 전달할 수 없었을까? 공교롭게도, <식객>의 내용을 재구성해서 진짜 맛집 가이드북 또한 나오기 시작했다. 웃기는 건 그림보다 말에 기대 음식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는 이 책이 차라리 <식객>보다 보기가 덜 거북스럽다는 점이다. <식객>은 맛집 아닌 맛집에 미친 우리의 현실을 참으로 적나라하게 반영해준다는 차원에서 의미 있는 저작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