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용재의 건축과 음식 사이

허울 좋은 '오너 셰프'의 허와 실



요즘 파인 다이닝 계의 유행은 <유학파 오너 셰프>이다. 그말 그대로, 해외 조리학교에서 조리 공부를 받고 와서 자기 레스토랑을 열어 꾸려가는 셰프들을 일컫는다. 왜 이러한 부류의 셰프들이 주목을 받고 있을까? 오너 셰프(owner/chef)란 말 그대로 주방을 꾸려 나가는 셰프가 레스토랑 자체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알고 보면 그렇게 어려운 개념도 아닌 것 같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오너 셰프의 출현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부동산 가격만 해도 실로 엄청난 수준인데다가, 서양 요리를 위한 주방기기를 갖추는 건 규모가 아무리 작고 또 기본적인 것만 갖춘다고 해도 많은 비용을 요구한다. 게다가 이러한 투자를 다 했다고 쳐도, 단지 우리 음식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적은 파인 다이닝의 수요가 자금 회전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있다. 한 끼를 위한 예산으로 십만 원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당신은 그 돈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먹을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숯불로 한우를 구워먹겠다고 대답할 것이다. 솔직히 더 큰 문제는 ‘그 돈으로 나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우아하게 식사하겠어’라고 결심해도 그 결심을 알차게 채워줄만한 내실을 가진 레스토랑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더 빠지기 전에 다시 원래의 주제로 돌아가 보자. 오너 셰프는 레스토랑의 가장 이상적인 운영방식이다. 무엇보다 음식을 잘 모르는 투자자, 또는 사장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셰프가 자신의 요리 철학을 마음껏 펼쳐 음식을 만들어 손님에게 내놓을 수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미국의 경우 오너 셰프가 자신의 레스토랑에 100%의 지분을 가지고 있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레스토랑 사업을 하는 투자자와 지분 투자에 따른 일종의 파트너 관계를 유지한다. 셰프를 보고 일종의 투자를 하는 셈이다. 이 또한 별도의 글이 필요하지만, 간략하게 말하자면 셰프는 조리사가 아니라 일종의 사업가이고 조직의 우두머리다. 또한 일종의 브랜드 파워를 가지고 있는 아이콘이기 때문에, 셰프의 조리가 아닌 존재 자체만으로 손님을 불러들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점을 보고 자본가들이 투자를 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투자를 하는 경우에도 셰프는 일종의 월급 사장이라기보다(물론 'Executive Chef‘의 개념으로 월급 사장을 하는 경우도 많이 있기는 하다) 사업 파트너의 개념을 통한 오너 셰프로 인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쨌든,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개념의 오너 셰프들이 늘어가고 있다. 매체를 통해 위에서 언급한 ‘유학파 오너 셰프’로 인식되는 셰프들은 대부분 30대 중후반이다. 때로는 이러한 나이에 어떠한 경로로 서울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레스토랑의 소유주가 될 수 있는지, 인생 사는데 별 도움이 안 되는 호기심이 발동할 때도 있기는 하지만 음식만 맛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므로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렇다, 모든 문제는 바로 음식이 별로 신통치 않기에 생겨나기 마련이다. 고백하건데, 이렇게 매체를 통래 잘 알려진 젊은 오너 셰프의 레스토랑들에서 먹은 식사가 만족스러웠던 적이 거의 없었다. 요즘 유행하는 파인 다이닝은 정해진 가격을 내고 전채부터 후식까지의 음식을 코스로 먹는 ‘prix fixe(영어로는 fixed price, 즉 고정 가격의 코스)'인데, 코스 전체의 구성이나 전체 음식의 어울림과 같이 큰 그림은 물론, 스테이크나 생선의 조리와 같은 작은 요소들까지도 흡족하다고 생각되는 수준을 보여주는 레스토랑이 별로 없었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셰프가 조리를 직접 할 필요는 없지만, 결국 셰프가 제대로 챙기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음식이 나온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생각할 수밖에 없어진다. 요즘 각광받는 오너 셰프들은 충분한 경험을 쌓은 뒤 레스토랑을 열고 셰프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교육기관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도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그건 다음 기회에 다뤄보기로 하고 일단 조리교육의 길이 그 자체만 살펴보기로 하자. 요즘 엄청난 교육기관인 것처럼 매체에서 다뤄지고 있는 미국의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의 경우, 21개월에서 38개월짜리의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평범한 남자의 예를 한 번 들어보자. 4년제 대학을 나오고 군대도 24개월 정도 갔다 온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남자가 대학을 졸업할 때의 나이는 얼추 스물여섯 정도가 된다. 이렇게 대학을 졸업한 경우라면 21개월짜리 Associate 프로그램을 권할 테니, 거기에 약 2년을 더하자. 그럼 스물여덟이 된다. 어떠한 지원을 받아서 여는지는 관심이 없지만, 그냥 서른다섯쯤에 자기의 레스토랑을 연다고 가정하자. 그럼 주방에서 경험을 쌓는 기간은 대략 7~8년이 된다. 자, 과연 이 기간 동안 셰프로서 기능할 수 있는 경험을 쌓는 것이 가능할까? 

당신이 회사원인데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서 나이 서른다섯쯤에 이사로 승진한다고 가정해보자.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인생의 경험 또한 지식의 수준과 궤를 같이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매체에서 젊은 사람들의 초고속 승진에 관한 훈훈한 미담을 더 많이, 자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십 년도 더 전의 일인데, 남대문 일대 어딘가의 순두부집에 관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본 기억이 있다. 주인의 젊은 아들이 일종의 후계자 수업을 받는데, 계속해서 순두부를 국자로 떠 뚝배기에 집어넣는 연습을 하는 장면이었다. 큰 국자로 부서지기 쉬운 순두부를 뜨는 일은 쉽지 않은데, 기대했던 것보다 순두부를 많이 부서뜨리자 주인의 질책이 뒤따랐다. 

겉으로는 무형문화재며 장인 정신을 부르짖지만 사실은 그 모든 끈기며 기술의 결정체를 대우해주는 시스템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가 저런데, 일본은 어떨까? 또한 오래전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장면인데, 라멘 집에서 가장 막내 견습생이 3년 동안인가 국자로 간장을 뜨는 것만을 보여주었다. 3년 동안 간장이라니, 웬만큼 끈기가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발도 들여놓기 싫은 삶의 현장이다. 

비단 우리나라나, 아니면 일본에서만 이러한 종류의 도제 시스템을 거쳐 요리사를 양성하지 않는다. 서양 요리 또한 마찬가지이다. 서양 요리의 경우 하나의 음식, 또는 그 음식의 조합인 코스가 이루어지는 과정이 선형적이기 때문에, 조리사 양성 또한 자연스레 이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를테면 접시 닦이-감자나 양파와 같은 야채 손질-고기와 생선 손질-불을 대치 않는 전채-야채 요리-소스-파스타-그릴-부주방장(sous chef)-주방장(chef)의 순이다(중간의 순서는 레스토랑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실패할 확률이 높은, 고난이도의 기술 및 감각을 필요로 하는 조리를 맡고, 사람을 함께 다루게 된다. 대강 9~10 단계의 이러한 셰프 양성 과정을 7~8년에 나눠서 이수한다는 가정을 해 보자. 각각의 단계에서 채 1년을 보내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위에서 가정한, 가장 평범한 한국 남자가 조리학교 유학까지 마치고 이러한 단계를 다 거쳐 셰프의 역할까지 배울 수 있을까(물론 여기에서, 외국의 레스토랑에서 일할 때 겪을 수 있는 언어 문제 language barrier는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 또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쉽게 헤아릴 수 있다. 조리학교를 통해 감자볶음 잘 만드는 법을 배우고 또한 한두 번 실습도 할 수는 있지만, 그것과 레스토랑에서 매일 100인분의 감자볶음을 주문과 즉시 늘 같은 수준으로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또한 그렇게 조리학교에서 감자 볶음 만드는 법을 배운다고 해서 감자 껍질을 빨리 벗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요는, 다른 많은 직업들과 마찬가지로 조리 또한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지식은 그저 시발점일 뿐이고 시간을 낀 경험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켜야 하는데,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학교 졸업 자체가 셰프의 능력을 인정하는 잣대처럼 매체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물론, 외국의 경우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나이 서른에도 셰프가 되어 자신의 레스토랑을 꾸리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경력을 들여다보면 빠르게는 중학교, 아니면 아무리 늦어도 고등학교때부터 동네 레스토랑에서 접시를 닦거나 감자를 깎는다. 그 가운데 일부는 조리학교의 교육으로 지식을 습득하지만, 아직도 철저하게 도제 시스템을 통해 배우는 조리사들도 많다. 대학? 선택이지 필수는 아니다. 이러한 시스템을 거치기 때문에 서른살 정도면 13~15년의 경력을 쌓게 되고, 지식은 물론 경험의 측면에서도 셰프로서 충분히 기능을 할 수 있게 된다. 

단순한 숫자놀음만을 통해서도 그 정도의 교육과 경험을 쌓는 것으로는 제대로 된 셰프가 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최근 각광받는 오너 셰프들은 대부분 이 정도의 경력이 전부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모두 천재 요리사인 것일까? 생각을 천재처럼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손발은 장인처럼 움직여야 제대로 된 요리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장인의 손발은 굳이 천재의 뇌와 함께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요즘 각광받는 오너 셰프들에게 부족한 것은 과연 천재의 뇌일까, 아니면 장인의 손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