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용재의 건축과 음식 사이

고층 건물과 기온 변화에 얽힌 잡다한 이야기들



연일 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춥다고 말하는 것조차 지겹거나, 그도 아니면 정말 추워서 입도 움직이기 귀찮아 춥다고 말하기가 싫은, 그런 날씨다.  섭씨 영하 15도나 17도나, 어느 이하로 내려가면 다 똑같은 느낌인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강남역과 같은 고층빌딩 밀집 지역-어디 강남역 뿐이겠냐만 가장 간단한 예를 들었다-에 가면 더 추운 느낌이 든다. 왜 그럴까? 바람 때문이다. 강풍이 고층 빌딩의 꼭대기에 부딪히면 탈출구를 찾아 하강하게 되는데, 이때 가속이 붙게 된다. 그래서 일종의 제트 기류(jet stream)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기온이라고 해도 바람 때문에 체감 온도가 내려가게 되고, 따라서 더 춥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 블로그를 갓 열었을 무렵 소개했던 만화책 <스위트 하우스>에도 그러한 내용이 가장 첫 번째의 이야기로 소개되어 있다. 글에도 소개 되어 있지만, 이 만화책은 남편이 갑자기 죽자 경력도 없는 상태로 설계사무소를 꾸려 나가며 그 안에서 성장하는 미망인의 이야기이다. 의지는 있지만 자격은 없는 여자의 앞에 나타난 경력사원은 여자에게 흑심을 품고 있는 부가 건축가가 지은 건물의 완공 파티에 참석해 제트 기류의 비밀(?)을 밝혀 건축가에게 공개 망신을 축하 선물 대신 증정한다는, 뭐 그런 이야기다. 

우리나라처럼 땅값이 비싸 밀도 높은 개발을 해야만 하는 곳에서는 이제 고층 건물이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사실 고층빌딩이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존재할 수 있는 건물이 아니다(사실은 건물이라는 것 자체가 “자연스럽게” 존재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거나 아니면 모순어법 oxymoron이다.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건축의 기원이자 존재 의미가 아니었던가?). 사실 요즘의 건물은 거대한 기계 덩어리에 가깝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건축의 존재 의미는 인간의 보호이다. 그러한 개념으로 따져 본다면 요즘의 고층 빌딩은 기계가 가득 찬 요새나 마찬가지이다. 출입구 개폐나 냉난방, 심지어는 블라인드 조절을 통한 일조량 통제와 같은 것들이 기계 부품으로 인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고, 구역이나 중앙 통제 시설에서 일괄 제어되기 때문이다. 케케묵은 농담 가운데 어떤 빌딩은 전시에 흔히 말하는 ‘마징가 Z'와 같은 로봇으로 변신해서 전투를 벌인다...와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변신 여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요즘의 건물에 들어가는 기계나 전자 부품들만을 따져 본다면 정말 국가 안보에 중차대한 비상사태에 변신쯤은 너끈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건물이 이렇게 복잡한 기계 덩어리화 되었기 때문에 그 관리 또한 전문적인 인력이 맡아야만 한다. 옛날처럼 관리실에 경비 아저씨들 몇 분 모셔 놓는 정도만으로는 그 복잡함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로봇에 관한 비유를 드는데, 로봇의 파일럿처럼 전문 교육-가만, 쇠돌이(?!)가 전문 파일럿 양성 교육 같은 걸 이수했다고 설정되어 있던가?-을 받은 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IT를 통한 시스템 제어에서부터 ‘관리 아저씨’와 같은 분들의 인력 관리까지 실로 다양한 분야(interdisciplinary)를 아우르고 ‘시설관리(Facility Management)'라고 일컫는다. 

위에서 제트 기류와 그로 인해 떨어지는 체감온도에 대해서 이야기 했는데, 고층 빌딩의 존재가 온도의 저하만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그 반대인 상승 또한 고층 건물의 책임이다. 이는 고층 건물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하나의 거대한 기계 덩어리로 열을 발산하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건물에 붙이는 유리(투명 유리는 물론 63빌딩에 붙어 있는, 유행이 이제 좀 지난 반사유리까지)또한 높은 빛 반사율로 온도 상승에 한몫 단단히 한다. 그 높은 빌딩에 잔뜩 들어 있는 우리 사람들은 또 어떤가? 이 모든 것들이 한데 모여 온도를 상승시키는 ‘도시 열섬 현상(Urban Heat Island)'를 유발한다. 이러한 요소들이 영향을 미치는 지역의 기후를 ’미세기후(microclimate)'이라고 일컫는다. 

물론 건축가들이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자본의 힘을 빌려 자신의 이름표를 붙인 바벨탑을 세우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것만은 아니다(물론 그러한 분들도 있기는 있을 것이다. 남의 돈으로 자기 이름표 붙은, 엄청나게 크고 높으며 자신이 죽은 뒤에도 웬만하면 얼마 동안 그대로 우뚝 서 있는 건물을 세울 수 있다는 점이 건축하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유혹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엘리베이터 안 들어가는 건물은 하고 싶지도 않다’라는 포부를 드러내는 분들도 심심치 않게 보았다. ‘라면은 큰사발! 건물은 큰건물!’ 의 수준이랄까? 물론 그것도 능력이 되어야 가능하겠지만?). 건축을 통한 자연의 파괴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지만 이를 최소화해서 환경 또는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를 건축판 지속가능한 디자인(sustainable design) 또는 그것보다 더 많이 쓰는 말로 “저탄소 녹색 성장”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에 관련되어 나는 미국의 환경 디자인 인증인 'LEED(Leadership in Energy and Environmental Design)'를 소지하고 있다. 요즘 이 ‘리드’에 우리나라 건축 인력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고 등급은 낮지만 인증 건물 또한 나오는 현실인데, 또 한 편으로 이를 과대포장해서 들여오려는 것 같은 움직임 또한 보이고 있어 우려 아닌 우려를 느끼고 있다. 그 이야기는 조금 더 조사를 한 다음 풀어보기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