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용재의 건축과 음식 사이

‘미디어 폴’의 존재 의미?



강남역 주변에 갈 때마다 고민하게 된다. ‘미디어 폴’이라고 이름 붙은 저 기둥들의 존재 의미는 대체 무엇일까? 세운 사람의 입장에서야 그 나름대로 거창한 명분이 있겠지만, 잠재적 사용자 또는 수혜자의 한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있었다. 아니 그것은 이해라기보다 감지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였다. 그 존재 자체에 아예 신경이 쓰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인지, 미디어 폴에 연동이 되는 홈페이지에는 친절한 소개 페이지가 있다. 궁금한 사람이라면 링크를 따라가서 직접 읽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체를 인용할 의도는 없다. 하지만 요약하자면 우리가 익히 다 아는 ‘디자인 서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쾌적한 거리 조성을 위한 거리 정비와 함께 가로등, 인포부스, 시설 안내 표지판 등 각종 시설물을 통합한 최첨단 공공 시설물”이 바로 미디어 폴이다. 또한 미디어 폴이 “시민들의 예술적 감성을 자극하는 디지털 갤러리”로서 “다양한 테마의 기획 전시와 높은 수줄의 예술 콘텐츠로 보행자와 시민들에게 즐거움과 편의성을 주어 강남대로를 누구나 찾고 싶어 하는 특화거리로 조성”하며 “활발한 시민 참여와 상권 활성화를 통해 지역 경제를 발전시킴과 동시에 강남대로는 고품격 복합 문화거리로 한 걸음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친절한 안내 문구를 읽고 지난 몇 년 동안의 강남대로를 반추해보기로 했다. 맨 먼저, ‘쾌적한 거리 조성을 위한 거리 정비’ 항목에 대해 생각해보자. 나는 미디어 폴의 존재가 어떻게 쾌적한 거리를 조성하는데 일조하는지 솔직히 이해를 잘 못하겠다. ‘쾌적함’은 과연 어떠한 상태인가. 사전을 찾아보니 ‘기분이 상쾌하고 즐거운 상태’를 뜻한다는데, 그렇게 따지면 물리적인 쾌적함과 정신적인 쾌적함으로 나눠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미디어 폴은 물리적인 쾌적함에는 아무런 일조를 하지 못한다. 그러한 기능이 있었나? 워낙 높은 설치물이므로 혹시라도 강남대로가 일정 수준의 이상으로 지저분해졌을 때 자동적으로 튀어나와 거리를 청소하는 로봇이라도 격납되어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해보았지만 가까이 가서 자세히 관찰해도 그러한 시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정신적인 쾌적함일텐데... 컨텐츠에 대한 고려는 차치하더라도 그저 번쩍거리는 대형 스크린일 뿐인 미디어폴이 어떤 수단으로 정신적인 쾌적함을 시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지, 그 또한 딱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시민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할 화이트 노이즈라도 틀어주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았지만 그런 장치도 되어 있는지 확실하지 않았고, 설사 있다고 해도 각종 소음 때문에 들리지 않을 확률이 더 높아 보였다. 이러한 종류의 설치물들이 항상 공감각적인 콘텐츠를 제공한다고는 말하지만, 도시라는 환경을 고려해보았을 때 청각에 대한 고려는 할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기술적인 제약을 생각해보았을 때 후각 또한 반영될 수 없다. 그렇게 따지면 결국 시각적인 요소 밖에 남지 않는다. 아무리 시각이 현대의 우세한 감각이라도 해도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 전부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는 하다. 

그 다음으로는 공공 시설물로서의 역할인데, 이 부분은 사실 기능보다는 현실 상황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더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적당한 인터넷 네트워크와 화면만 있다면 사실 안내 시설 따위를 넣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닌 기능을 실현하기 위해 디지털의 개념에 역행하는 규모를 가진 물리적인 개체가 반드시 동원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문장이 좀 꼬인 것 같은데, 달리 말하자면 그렇다. 디지털의 핵심은 결국 작고 편하게 가는 것일 텐데, 저렇게 거대한 물리적 개체에 디지털의 기술을 덧씌우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냐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요즘 유행하는 스마트폰이라면 그 정도의 길 찾기 기능 정도는 얼마든지 제공한다. 더 웃기는 건, 미디어 폴이든 스마트 폰이든 그 기능을 쓸 줄 아는 사람이라면 딱히 길 찾기를 위한 도움이 필요 없을 세대일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그런 도움이 필요한 세대는 분명 디지털 미디어에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층 이상일 텐데, 그런 분들에게 과연 이러한 시설이 어떤 종류의 편의성을 제공할까? 이제는 대부분 자동 발권기로 교체되어 매표소도 직원도 없는 지하철역에서 헤매는 중장년층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슨 의미인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디지털의 핵심이라는 것이 결국 이동성(mobility) 아닌가? 날씨가 따뜻할 때는 길가다가 심심한 사람들이 스크린도 한 번씩 눌러보고 지도도 들여다보고 ‘셀카’도 찍어 전송하지만, 요즘처럼 한낮에도 절대 영상으로 올라가지 않는 기온에는 정말 아무도 이 미디어폴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홈페이지를 들여다보라. 사진이 딱 한 장 올라와 있는데, 마지막으로 올라온 사진이 1월 16일의 것이다. 물론 사람들이 찍은 사진을 여기에 올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누가 이 추운 날씨에 거기 멈춰서서 ‘김치~’를 외칠까? 그렇다면 이 미디어폴은 여름용인가? 이러한 기능을 가진 공공 시설물은 그 형태를 달리해서 서울 시내에 굉장히 많이 분포되어 있다. 최근 지하철역에 그 수를 불려가고 있는 ‘디지털 뷰’와 같은 시설물 또한 같은 개념을 가지고 있는데, 결국 절반은 광고이고 절반은 딱히 필요도 없는 정보를 전달하는 대형 스크린일 뿐이다. 이러한 시설물들이 다음 지하철을 타기 위해 채 10분도 역에 머무르지 않을 이동인구를 위해서 과연 어떠한 기능을 제공하는 것일까? 홍대 정문을 올라가는 오르막길에도 비슷한 시설물이 가로에 설치되어 있는데, 주말 밤 이 일대의 유동인구를 생각해 본다면 이러한 시설물의 물리적인 존재는 가뜩이나 쾌적하지 않은 보행환경에 장애물로 작용할 뿐이다. 

전시의 측면 또한 마찬가지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미디어 폴의 스크린에서 나오는 전시물에 얼마나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일까? 강남대로는 그야말로 거닐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절대 좁지 않은 보도지만 기본적인 유동인구가 엄청나고, 거기에 노점상이며 전단지를 돌리는 홍보 인력과 같은 요소들까지 합친다면 평균 보행 속도로 걷기조차 버거운 곳이다. 이런 상황에서 화면에 나오는 내용물이 무엇인지 감상할 수 있을까? 지난주에도 몇 번이고 그곳을 지나쳤고, 때로 신호에 걸린 버스 안에서 보다 더 오랫동안 미디어 폴을 감상할 기회를 가질 수도 있었지만 기억을 더듬어 봐도 남는 건 그저 광고일 뿐이었다. 



집이 경기도인 탓에 강남역에서 버스를 타게 되는데, 그 어느 버스 정류장도 정류장처럼 생기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저 감에 의존해 버스 정류장이라고 생각되는 가상의 장소에서 서서 버스를 기다린다. 가뭄에 콩나듯 표지판으로 그 존재를 알리는 정류장도 있기는 하지만 표지판이 비바람을 막아주지는 않는다. 어차피 버스를 타고 강남, 또는 서울을 떠날 사람들이니 좀 박한 대접을 받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서울 시내만 돌아다니는 버스 정류장의 상황이 좀 낫느냐면, 또 그런 것도 아니다. 도로 한 가운데에 소떼처럼 좁은 보도블럭 위를 아슬아슬하게 몰려다니도록 하는 정류장의 형편은 그래도 낫다. 전용 도로를 달리지 않는 버스들의 정류장은 그야말로 가관이다. 


사진의 정류장은 미디어 폴 바로 옆에 있는 것이다. 미디어 폴은 그저 랜드마크나 기념비에 대한 집착을 바탕으로 세워진, 보기 좋은 광고판일 뿐이다. 꿈보다 해몽이 더 좋다고, 홈페이지의 거창한 포부라도 밝혀놓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반짝거리는 광고를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묘해지는 건 정말 어떻게 막을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