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용재의 건축과 음식 사이

아파트에 관한 두 권의 책



전세 대란의 한 가운데 서 있다. 4월에 계약이 만료되는데, 집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팔렸다. 그러므로 다른 집을 구해 나가는 것 밖에는 다른 길이 없는데, 집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는 해봐야 그저 구차할 뿐이다. 뉴스를 보니 전셋집을 구하지 못해 결혼마저 미루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슬퍼질 수준이다. 물론, 나에게 미뤄야 할 결혼 같은 건 없으니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전세라는 건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라고 알고 있다. 보통 월세를 낸다. 미국의 경우 집을 산다는 건 집값으로 장기 대출을 받는 돈의 일부를 초기 착수금 형식으로 자가 부담한 뒤, 나머지의 대출금과 이자를 기간 동안 갚는 형식이다. 원금을 갚는 경우는 자기 돈이 되지만, 이자만 갚는 경우라면 이 또한 월세나 다름이 없다. 간단히 말해 대출금의 일부+월세로 집의 소유권을 가지는 셈이다.



집, 즉 아파트를 구할 생각에 골치가 아프다 보니, 아파트에 관한 책 두 권이 생각났다. 첫 번째 책은 제목부터 많은 것을 말해줄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아파트에 미치다>이다(전상인 지음). 저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주거 형식인 아파트를 통해 우리나라를 들여다본다. 말하자면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아파트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채 200 페이지도 되지 않는 분량으로 <아파트에 미치다>와 같이 거창한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것인지 그것조차도 잘 모르겠다. 제목은 야심차고 선정적으로 붙였지만 그만큼의 충실도는 떨어진다고나 할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모순 인건, 사실 아파트를 둘러싼 현실은 그야말로 시궁창이지만 그 개개의 아파트 대부분들의 충실도는 치열한 브랜드 경쟁 때문에 뛰어나다는 것이다. 이렇게 아파트도 나름의 충실도를 가지고 있으니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려면 이보다 조금 더 밀도 있는 결과물을 내놓았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결론을 말하자면, 딱히 매력적인 읽을거리는 아니었고 기억도 희미하다. 특히 아파트가 당연히 주거의 형식이니만큼 건축적인 시각이나 지식이 보다 더 강화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여러 연구결과들을 나열하고 있지만 단순히 인용하고 있다는 인상 밖에는 주지 못한다.



<대한민국 아파트 발굴사>는 <아파트에 미치다>와 반대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쓴 책이다(장림종, 박진희 지음). 사회학을 공부한 사람의 시각으로 아파트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건축적인 시각 또한 편입시키려 시도한 책이 <아파트에 미치다>라면, <대한민국 아파트 발굴사>는 건축을 공부한 사람들이 아파트에 관한 이야기는 과정에서 사회나 문화에 관한 시각 또한 편입시켰다는 의미이다. 

부제 <종암에서 힐탑까지, 1세대 아파트 탐사의 기록>이 말해주는 것처럼, 책은 요즘처럼 최첨단으로 진화한 아파트에 비하자면 같은 범주에 넣는 것조차 민망하고 초라해 보이는 옛 아파트들을 직접 찾아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집을 만난다는 건 결국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므로 결국 책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또한 담고 있다. 

우리는,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최첨단으로 진화한 아파트조차도 열악한 주거 형식으로, 마치 습관처럼 낙인을 찍는 현실-대안도 별로 없으면서-에 살고 있다. 그러한 시각을 견지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오래된, 그래서 벌써 오래 전에 재개발이나 철거의 대상이 되었어야할 아파트들은 진정 사람이 살만한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단 지난 시간의 흔적을 담고 있다는 의미만 놓고 따져보더라도, 이러한 아파트들의 가치가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근대의 시간성을 부정하는 경우라면(예를 들자면 청계천과 을지로 주변 상가 간판의 집단 정비와 같은 것들), 이러한 아파트들이 가지는 가치가 과소평가 되어서는 안 된다. 여담이지만 아파트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르 코르뷔지에의 ‘Unite D'habitation'조차도 실제로 가서 보면 그 시간의 흔적은 물론 ’닭장‘과 같은 규모에 놀라게 된다. 땅값이 비싼 우리 현실에 낡은 건물이라면 의무감에서라도 헐고 더 높이 올려야한다고 생각하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잃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대한민국 아파트 발굴사>가 견지하고 있는 시각은, 그렇게 잃어가고 있는, 아니면 멸종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 아파트 원형의 재조명이다. 그를 통해 그렇게 먼 옛날도 아닌 과거에 지어졌던 아파트들이 지금과는 달리 공동체 공간과 같은 개념들도 도입하고 있었다는 것과 같은, 의미 있는 정보를 전달한다(물론 요즘의 아파트들 또한 이런저런 건축, 비 건축적인 장치를 통해 공동체의 개념을 도입하지만, 이는 사실 아파트의 브랜드 정체성 확립을 통한 상품 가치 상승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현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아파트의 사회나 문화, 역사적인 의미 또한 한데 엮는데 그 ‘충실도’가 오히려 그런 시각으로 아파트에 접근한 <아파트에 미치다>보다 훨씬 높다. 

30년쯤 전, 응암동에 고모댁이 있어서 자주 가곤 했는데, 그 근처에 이 책에서 소개된 것들과 비슷한 종류의 아파트가 있었다.  너무 오래 되어 가물가물하면서도 긴 중복도의 끝에 있던 공중화장실덕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아파트는 우리에게 가장 현실적인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현실을 외면하고, 그렇게 현실을 외면하다보니 과거는 아예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필자는 “찬란한 것들,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내기에 급급한 지금 다시 한 번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미래를 위한 일일 것이다”라고 밝히며 책을 마무리한다. 우리에게는 과거 청산이 본의 아니게 언제나 화두인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과거는 과거이기 때문에 부끄러워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청산하려고 하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현재의 과거를 대처한 그 높고 번쩍거리는 것들도 언젠가는 그 광채를, 그것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잃고 과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