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용재의 건축과 음식 사이

도시와 시간의 흔적, 그리고 서울다움

(사진은 @cjreally님에게 제공받았다)

원래 다른 글을 쓰려던 참에, 누군가의 트윗을 보게 되었다. “세운상가 뒤가 가장 서울 같아서.” 밤의 세운상가 사진이었다. ‘폰카’로 찍은 다소 조악한 느낌의 사진이 오히려 어슴푸레한 청계천의 분위기를 더 그럴싸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강남은 강남 나름의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서울하면 강북이고 또 을지로나 청계천 쪽이 가장 서울답다고 생각한다. 아름답기 때문은 아니다. 그렇다면 기와집들이 아직도 남아있는 북촌이며 가회동을 꼽아야만 할 것이다(물론 망가질 대로 망가진 삼청동은 아예 언급도 하지 말자. 혈압이 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런 지역은 서울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 아니다. 서울토박이도 아닌 나에겐 을지로와 청계천 일대가 바로 그런 곳이다. 

청계고가차로가 사람들에게 어떤 인상으로 기억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을지로나 청계천 주변에서 벌이는 술판의 하이라이트며 클라이막스는 바로 청계고차차로를 타고 달리는 총알택시였다. 마장동 축산물 시장의 어귀에서 살던 시절이었다. 토요일 새벽 두 시께, 술에 거나하게 취해서 집으로 향하는 잡아탔던 택시는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청계고가차로 위를 정말 총알처럼 달렸다. 술기운과 택시의 속도, 그리고 고가도로의 높이까지 한데 더하면 정말 도시를 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주 추운 한 겨울이 아니면 늘, 그 도로 위를 달릴 때마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도로 아래로, 또는 눈높이로 빠르게 지나가는 도시의 불빛을 음미했다. 

종로에서 청계고가도로를 쭉 따라 마장동까지 걸어간 적도 많았다. 이제는 십 년도 더 된 일이라 희미하지만, 아직도 황학동의 풍경이나 유리 뚜껑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달팽이의 기억은 남아 있다. 남의 나라에서 근 십년 가까이 사는 동안 청계고가도로는 사라졌고, 청계천은 복원 아닌 복원이 되었다. 그 이후로 그 일대를 걸어서 지나본 적은 아직 없다. 다만 작년 봄 참가했던 하프 마라톤 코스가 그쪽으로 지나쳤는데, 달리기의 고통 및 기록을 향한 욕심 때문에 거리의 면면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넓어지고, 새 건물이 많이 들어섰다는 것만은 기억하고 있다. 

뜬금없이 서울다움과 세운상가를 연결하려는 시도를 보이는 것은, 진정한 도시의 매력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싶어서다. 세운상가는 아름답지 않다. 잘 빠지고 세련된 고층건물도, 처마의 선이 아름다운 문화유산인 한옥도 아니다. 그저 지저분하게 낡은 콘크리트 건물일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지저분하게 낡은 것도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물론,  도시 전체가 세운상가의 건물 같은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그것도 곤란하다. 또한 고층건물이나 한옥으로만 이루어져 있어도 매력은 반감될 것이다. 한옥이며 세운상가며 고층건물과 같이 각자 다른 시간의 흔적을 지닌 것들이 한데 어울리지 않는 듯 어울려서 만들어내는 전체의 모습, 그것이 도시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단순히 좋아하다 못해 동경하는 서양의 도시들은 대부분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과거의 모습만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어우러지면서 존재한다. 공존일 수도 있고, 혼재여도 상관은 없다. 파리를 예로 들더라도, 굳이 샹젤리제 거리며 에펠탑, 그리고 라데팡스를 한 꼬치에 꿰려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현대 이전의 건축물에 요즘의 간판이 어떻게 자리를 잡고 있는지만 봐도 된다. 

대부분의 유럽 도시들이 이러한 시간의 흔적을 매력으로 내세우고 있는 반면, 베를린은 예외다. 세계 제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의 폭격으로 시가지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다. 그 위에 다시 세운 베를린은 넓은 길이며 시가지가 유럽의 도시보다는 오히려 서울과 느낌이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다만, 상품화된 전쟁의 역사가 도시를 장악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나름대로 세련된 도시였지만, 어째 인간미를 느끼기가 어려웠다. 굳이 규모가 크거나 커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모든 것들이 너무 같은 시기에 자리 잡은 느낌이 까닭 없이 불편하게 다가왔던 기억이 선하다.

서울이라는 도시에도 사실 오랜 시간의 흔적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전쟁을 겪기도 했으니), 대신 우리는 아주 빠른 변화를 계속해서 겪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유럽의 도시처럼 아름답지는 않아도 그 나름 극적인 변화가 켜켜이 쌓여있고 그 점이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시간의 흔적도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로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의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큰길에 면한 세운상가의 얼굴은 공원이라는 가면으로 덧씌워졌다. 동대문 운동장 자리에는 유명한 해외 여류 건축가의 전매특허인, 초현대적 디자인의 거대한 건축물이 들어선다. 한창 공사중인데, 그 옆을 지나가면 생각보다 큰 규모에 깜짝 놀란다.

건물뿐만이 아니다. 트레일러까지 단 오토바이들이 가뜩이나 좁은 인도로 달리는 통에 걷기가 썩 편하지는 않지만 오밀조밀하게 쌓여 있는 물건들의 표정이 다채로운 청계천이며 을지로 상가의 간판들도 거의 전부 새롭게 물갈이 되었다. 비단 이것이 정책 입안자의 시각 차원에서만 이루어지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용산구 문배동-삼각지역 부근-에는 오래된 육개장, 칼국수 집이 있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면 창밖으로 보이는 가게다. 이 가게의 간판은 최근까지도, 오래 전에 사라진 화학조미료의 상표를 달고 있는 다 낡은 것이었다. 건물이며 간판, 그리고 파는 음식마저도 조화를 이루고 있는 분위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기차를 타고 지나가다 세련된 간판으로 교체된 것을 보았다. 그것 말고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겠지만, 어째 예전과 같은 느낌이 나지 않았다. 내가 주인도 아니니 간판이 어떻게 되든지 사실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어째 섭섭했다. 

어떠한 건축적인 유산이 너무나 역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노력을 기울여서라도 보존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낡고 지저분한 세운상가가 어떠한 건축적인 의미며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그건 더 시간을 들여서 따져보아야 할 별개의 문제다. 다만, 낡은 것들을 계속해서 지우고 새 것을 더하는데 그만큼 우리가 얻고 있는지, 그게 궁금할 뿐이다. 그런 것들이 도시에서 사라진다고 내 삶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위에서도 말한 것처럼 계속해서 섭섭해진다.